안무단체 ‘나나스쿨’은 국내 방송·가요 안무의 산증인이다. 정진석 나나스쿨 단장(37)을 최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나나스쿨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지난달 이전해 문 연 이 공간은 건물 6층에 자리해 3면의 통유리를 통해 채광과 시야가 충분히 확보된 쾌적한 곳이었다.
정 단장은 소녀시대의 ‘Gee’, 이효리의 ‘U-Go-Girl’ 안무를 만든 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핑클과 젝스키스의 거의 모든 춤을 비롯해 세븐, 코요태, 동방신기, 카라, 걸스데이, 빅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케이팝 댄스, TV 광고와 예능 프로그램에 쓰인 안무가 그의 몸과 머리에서 나왔다. 스무 살 때부터 가요계에 몸담았다. 케이팝 열풍의 시발점인 2011년 프랑스 파리 SM타운 콘서트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그의 춤은 웬만해선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찾아온 오른쪽 눈 실명과 희귀 암 투병으로 인한 2년의 공백기만 빼면. 2011년부터 서울예술종합실용학교 전임교수를 맡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무대에 직접 올라 가수 뒤에서 춤춘다. 최근에도 전진의 중국 베이징 공연 무대에 오른 뒤 돌아왔다는 그를 커피 테이블 앞에 앉혔다.
―2014, 2015년 케이팝 안무의 트렌드는 뭐였나.
“작년엔 콘셉트를 내세운 아이돌이 많았다. 좀비, 드라큘라 같은 ‘다크’한 콘셉트. 무한 경쟁 속 차별화를 위한 시도다. 2015년엔 이런 트렌드가 좀 줄었다. 멤버 수가 많은 그룹이 늘다 보니 트렌드가 덜 뚜렷해진 것 같다. 장르로 치자면 어번(urban) 댄스가 여전히 대세다.”
―어번 댄스란 뭔가.
“미국의 재닛 잭슨, 저스틴 팀버레이크 안무가들이 만든 틀로서, 근 10년간 주류를 이뤘다. 2013년 미국에서 ‘어번 댄스 캠프’가 열리면서 ‘어번 댄스’는 장르 이름처럼 굳어졌다. SM, YG가 쓰는 외국 안무가들도 어번 쪽이 많다. 1990년대 재즈 댄스에서 2000년대 초반 힙합을 거쳐 지금은 어번의 시대다. 쉽게 얘기하면 엑소의 ‘으르렁’, B1A4의 ‘Sweet Girl’을 포함해 현재 활동하는 거의 모든 아이돌 댄스는 어번 기반이라 보면 된다. YG는 어번에서도 가장 선두에 있다. 그들과 협업하는 호주 여성 안무가 패리스 고블(빅뱅, 태양, CL 등)이 대표적이다. 복잡하지 않은, 바운스나 그루브 위주의 안무다. SM 쪽에서 많이 활용한 미국의 토니 테스타는 연출이 뛰어난 대표적 어번 안무가이다.” ―2016년의 케이팝 안무 트렌드를 예측해 본다면….
“어번의 강세가 몇 년은 더 이어질 듯하다. 케이팝 내에서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안무도 다양한 걸 수용하고 있다. 작년부터 힙합이 주류로 올라오면서 스트리트 댄스를 하던 이들이 방송 안무계로 많이 진입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복고도 부상했다. 패션에서도 팀버랜드 부츠, 토미 힐피거, 폴로 스포츠처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아이템이 다시 활용되고 있다.”
―나나스쿨은 댄스 가요의 역사와 함께했다. 언제 창립됐나.
“1998년도다. 김건모, 신승훈, 노이즈처럼 김창환 프로듀서가 주도한 라인기획 가수들이 유행할 때 강원래 씨와 함께 있던 안무 팀이 나나스쿨을 만들었다. 기획부터 구성, 제작과 실행을 구성원이 다 같이 모여 작업하는 ‘크루’ 형태가 우리 특징이다.”
―언제부터 안무가의 길을 걸었나.
“춤은 학창 시절부터 췄다. 대학은 방송연예과에 입학했지만 춤추고 싶어 학교를 관두고 나나스쿨에 1998년 팀장으로 들어왔다. 안무가로서의 이른바 ‘입봉’(데뷔)은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다. 그 이후 ‘루비’ ‘영원한 사랑’ 등 핑클의 모든 타이틀곡 안무를 짰다. 젝스키스, 코요태, 샵, 김건모의 안무도 초기 작품이다. 아내도 안무가다. 이효리의 ‘10 Minutes’ 안무를 담당한 배상미 한국방송댄스협회장이다.”
―남자인데 여성그룹 안무를 많이 한 것 같다.
“활동 초기부터 여성 그룹을 많이 맡았다. 젝스키스도 있었지만 클레오, 베이비복스, 슈가, 천상지희…. 그땐 안무 제작비를 따로 받지 않았다. 차비나 용돈 개념이었다. 나를 비롯한 안무가들도 ‘춤이 먼저, 돈은 나중’이란 개념을 갖고 있었다.”
―경력 초기에 비해 현재 안무가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는 많이 달라졌나.
“좋아졌지만 화려한 외양에 비하면 돈 벌기 좋은 직업은 아니다. 특히 안무 제작을 하지 않고 무대에만 서는 친구들은 회당 출연비가 적어서 생활 유지가 쉽지 않다. 안무 제작과 레슨에 빨리 뛰어들어야 돈을 벌 수 있다. 작년에 한국방송댄스협회도 설립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대중문화예술상에 안무가 부문도 생겼다. 케이팝이 해외로 수출되는 데 안무가도 역할을 한다는 걸 국가가 인정해 준 셈이다. 예전엔 단체도 없고 서로 경쟁도 심했다. 올해 안무가저작권협회가 생겨 사단법인으로 인정받았다.”
―안무 제작비는 노래 한 곡당 얼마쯤 되나.
“대개 500(만 원) 선인 걸로 안다. 내 활동 초기에 200만∼300만 원이었는데 별로 오르지 않았다. 특히 방송 (댄서) 출연비는 인상 폭이 더 낮다. 회당 7만∼10만 원 수준이다. 일주일 내내 TV에 출연해도 월수입이 얼마 안 되다 보니 이쪽에 뛰어드는 친구가 이제 많지 않다.”
―가요 기획사가 안무가와 협업하는 방식에는 그간 얼마나 변화가 있었나.
“거의 변화가 없다. 기획사마다 작업 방식이 다르다. SM처럼 모든 콘셉트가 정해진 상태에서 합류하는 경우도 있고, 기획 단계부터 안무가의 회의 참석을 원하는 회사도 있다.” ―유튜브 시대는 안무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장점이 더 많다고 본다. 우선 세계의 안무 트렌드를 읽기 쉽다. 새로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는 멋지고 좋은 안무를 언제든지 보고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좋을 거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쪽에는 카피(베끼기)가 많았다. (카피를) 안 하는 사람이 뒤처져 보일 정도였다. 외국 안무는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라는 인식까지 있었다. 10년 전부터 인터넷과 유튜브의 발달로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상황이다. 외국의 덜 알려진 안무가의 춤을 베꼈다가 유튜브에서 문제가 돼 망신을 당한 안무가도 있다.”
―안무계에도 표절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건가.
“이른바 선수들끼리는 다 안다. 하지만 뭐라 하기 그래서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국내 안무가들의 중국, 일본 시장 진출 현황은 어떤가.
“일본에서 안무 제작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일본은 예전부터 한국보다 안무 트렌드가 많이 빨랐다. 일본 현지에서 케이팝 안무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진출한 정도다. 중국, 동남아는 사정이 다르다. 제작 의뢰가 꽤 들어온다. 특히 중국 쪽이 많다. 중국 현지 기획사에서 아이돌 그룹을 기획할 때 한국식으로 하고 싶어 해서 보컬 트레이너, 안무가, 스타일리스트를 모두 한국인 팀으로 짜는 경우도 많다.” ―중국에서 국내 안무가에게 제작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 건 언제부턴가.
“5년쯤 전부터다. 의뢰는 많은데 프로젝트가 성사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지 기획사가 아이돌 그룹을 기획했다 투자를 못 받아 유야무야되는 일도 잦다. 국내 안무가 입장에선 성사만 되면 안무를 구성해 영상으로 찍어 전송만 하면 보수를 받으니 편하긴 하다. 안무를 보내주면 현지 기획사에서 원하는 부분만 잘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대로 가져다 쓰기에는 한국과 풍토가 안 맞는 부분이 있으니까. 중국 기업의 자본력이 막강하다 보니 요즘은 한국 안무가에게 영향을 준 미국 안무가를 아예 직접 데려다 쓰기도 한다.”
―국내 안무가들 사이에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넘어가기엔 아직 어렵다. 중국 기획사들은 대개 한국 안무가의 현지 체류를 원한다. 결국 안무가는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가야 한다. 중국 현지에서 레슨을 하거나 학원을 하는 한국 안무가들이 많은데 한국 활동이 적은 이들 중심이다. 중국에 나나스쿨 차이나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쪽에서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주면 마다할 건 아니지만 아직 그쪽에 믿을 만한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고 본다.” ―케이팝 안무가들에 대한 수요가 중국 다음으로 많은 나라는 어딘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대만에서 의뢰가 들어온다. 필리핀, 태국은 최근 한류가 많이 줄었다. 거품이 빠졌다.” ―해외 현장에서 본 최근 케이팝 동향은 어떤가.
“한류 시장이 축소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돌은 포화 상태다. 비슷한 케이팝 콘텐츠가 너무 많다. 안무가 입장에서 보면 의뢰 건수가 많아지니 좋긴 한데 대중의 기억에 각인되지 않고 소모되는 춤이 많아져 아쉽다. ‘트렌드가 뭐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운 이유다.”
―케이팝 안무 제작에 있어 해외 팬의 취향도 반영이 되나.
“기획사는 고려할 수 있어도 안무가가 거기까지 계산하긴 힘들다. 내 경우 90%는 음악에서 받는 느낌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안무의 트렌드를 끌고 가는 나라는 여전히 미국인가.
“그렇다. 춤에 있어선 여전히 가장 빠르고 트렌디한 곳이다. 스트리트 댄스의 경우엔 기술 좋은 이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지만, 어번 댄스나 방송 안무는 여전히 미국의 영향이 지대하다. 한국이 자기 스타일을 많이 만들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나 힙합이 주류 가요로 올라오는 흐름이 향후 안무 제작에도 큰 영향을 미칠까.
“EDM의 영향은 근년에 조금씩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EDM 계열의 춤은 자기가 즐길 때는 재밌는데 보여주는 퍼포먼스로는 표현하기 적합한 장르가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 아이돌 그룹은 보여주는 춤을 춰야 하니 괴리가 있다. 즐길 수 있는 음악과 팬덤을 만드는 음악의 차이가 커진 것 같다.”
―앞으로 케이팝 안무에 대한 저작권 개념, 저작권료 징수 가능성은 늘어날까.
“무용은 장르 특성상 힘든 부분이 있다. 음악은 악보가 증거로 남는데 안무는 저작권 기준이나 체계가 아직 없다. 예를 들어 웬만한 무용학원에는 방송 댄스 과목이 개설돼 있다. 그들은 안무가가 공들여 제작한 안무를 맘대로 쓰면서 이득을 챙긴다. 유명한 안무를 만들었다고 해서 수익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단체가 생기고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해외의 경우, 예를 들면 재닛 잭슨이 5년 간격으로 앨범을 내도 담당 안무가는 큰 수익을 얻는 걸로 안다. 우리나라는 작업량에 비해 수익이 적은 편이다. 금방 쓰고 버리는 수익 구조여서 그렇다.” ―춤동작은 주로 어디서, 어떻게 떠올리나.
“작업실에 틀어박히는 건 도움이 안 된다. 일단 밖에 나간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늘 뭔가 떠오른다. 음악이 주는 느낌에 집중한다.” ―전성기에 찾아온 실명과 암 발병은 어떻게 이겨냈나.
“춤 일을 관두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안무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에 죽고 싶었던 적도 있다. 암은 빠른 수술과 회복으로 이겼지만 한쪽 눈 실명으로 입체감이 사라졌다. 반복 훈련을 통해 감각적으로 보완하는 법을 익혔다. 내겐 돌아올 곳이 여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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