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산업화 일궈낸 나라인데… 금-흙수저로 청년들 절망해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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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공익대상’ 받은 화우공익재단 이홍훈 前 대법관

지난해 겨울 연탄 배달봉사를 하는 이홍훈 전 대법관. 법무법인 화우 제공
지난해 겨울 연탄 배달봉사를 하는 이홍훈 전 대법관. 법무법인 화우 제공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나오고 외국으로 떠나려는 움직임도 있잖아요. 하나의 힘으로 민주화, 산업화도 일궜는데 청년들이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한다면 큰일이죠. 이제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할 때입니다.”

5일 서울 강남구 아셈센터에서 만난 이홍훈 전 대법관(70·사법연수원 4기)은 늘 그렇듯 조금 어눌하지만 진솔하게 말했다. 35년간 법관 생활을 한 그는 지금은 법무법인 화우에서 공익재단을 이끌고 있다. 화우공익재단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변협 인권재단이 제정한 ‘제4회 변호사공익대상 단체부문’에 선정됐다. 정관수술과 낙태로 피해를 본 한센인들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노숙인과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꾸준히 공익활동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그는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변호사의 사명으로 규정한 변호사법 1조를 언급했다. “공동체의 기본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특히 대법관 출신들이 공익 활동에 나서는 게 법조인 전체에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2013년 8월부터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법조계의 기존 관행을 거부하면서 내부 징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년 반 동안의 논의를 거쳐 법조인이 따라야 할 행동지침으로 지난해 11월 ‘법조인 윤리선언’까지 선포했다. 선언에는 ‘인권 옹호와 정의 실현’, ‘사회적 약자 및 국민 권익 보호’ 등 6가지 덕목이 담겨 있다.

그는 “생존의 문제 때문에 변호사들이 사명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윤리를 잘 지켜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 신임 법조인들을 지속적으로 교육해 선언문을 체득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법관 생활을 그만두고 1년 동안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일한 그는 2011년 국회에서 통과된 ‘전관예우방지법’(자신이 근무했던 임지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법) 적용 대상 1호로 알려져 있다. “법이 통과되지 않았더라도 개업하지 않고 조용히 시골에서 보낼 생각이었어요. 그 뒤 공익활동을 하려던 참에 로펌에서 제의가 왔고, 고민 끝에 공익재단 이사장직을 수락했습니다.”

법관 시절 그는 네 차례 낙마 끝에 다섯 번째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 비로소 대법관이 됐다. 이순(耳順) 때 뒤늦게 시작한 대법관 생활은 정년 탓에 임기 6년을 채우지 못하고, 5년 만에 끝났다.

그러나 그의 존재감은 컸다. 파업이 예측 불가능했을 때만 제한적으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2011년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등 박시환, 김지형, 김영란,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소신 있는 소수의견을 많이 내 ‘독수리 5남매’로 불렸다.

그는 “남들보다 늦게 대법원에 들어갔으니 어쨌든 다양화는 한 셈이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된다는 점에서 젊은 사람들과 의견이 같았고, 그래서 외롭지 않더라”며 웃었다.

그는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침해당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게 사법부의 책무”라며 “대법원이 헌법상 인권을 보장하는 의미 있는 판결들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권변호사인 고 조영래 변호사와 경기고, 서울대 법대 동기다. 사람을 위한 법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절친한 친구처럼 그의 시선도 늘 사람을 향해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홍훈#화우공익재단#변호사공익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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