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인 1986년 서울소년원(정식명 고봉중·고등학교)과 첫 인연을 맺었다. 전북 익산에서 영어교사로 교단에 선 후 4년째 되던 해 과감히 사표를 낸 지 1년 만이었다. ‘꼬부랑 언어’를 반복해서 가르치는 게 지루했다. 다시 교편을 잡았던 건 계속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청소년 상담에 더 관심이 가던 중 소년원 경력 교사 7급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다.
그렇게 30년 공직생활 중 27년 2개월을 오롯이 소년보호 행정에 바친 ‘소년원의 대모’ 송화숙 신임 서울소년원장(57·여·사진)이 15일 취임한다. 법무부 창설 이래 보호직 최초의 여성 고위 공무원이자, 1942년 서울소년원이 문을 연 지 74년 만에 탄생한 첫 여성 원장이다. 정년을 앞두고 초임지에서 마지막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는 만큼 감회도 새롭다.
“(학생들의) 반항에는 이유가 있어요. 학생 처지에서 생각해 보고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 좋은 메시지로도 감화시킬 수 없습니다.”
송 원장은 소년원에 오는 아이들을 원생이라 하지 않고 ‘학생’이라고 부른다. 소년원에 오는 이들에게 배움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해서다. 그가 꼽는 최고의 지도 가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송 원장은 “법원에서 넘어오는 학생들의 범죄 사실 자료를 보면 (범행 원인이나 동기가) 열악한 환경 탓인 경우가 많다”며 “이중 삼중으로 고충이 있는 아이들에게 제일 가까이에서 영향을 미치는 선생님들이 ‘내가 그런 환경에서 컸다면 어땠을까’ 짐작해 보고 헤아려야 비로소 아이들도 마음의 문을 연다”고 설명했다.
그가 가르친 학생들이 어느덧 2000명을 훌쩍 넘었다. 대들고 반항하는 학생들, 일반 학교와는 사뭇 다른 딱딱한 분위기여서 교사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피붙이보다 더 진하게 지내는 제자도 적지 않다. 아버지의 알코올의존증과 가정폭력 속에 방치된 여학생은 후원자를 연결해 주고, 정규 교육과정도 마치게 해 사회인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운 덕분에 26년째 연락을 이어 오고 있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그 여학생과는 사제지간을 넘어 친자매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다. 최근에는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 훈련을 마친 제자의 아들을 함께 면회하기도 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청소년 보호시설인 서울소년원은 수용 원생이 250명 정도다. 송 원장은 수시로 들고 나는 원생들에게 맞춤형 멘토링 사업 등으로 부족한 개별 지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 개발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을 있는데 이 기간에 모든 기술을 배우거나 지식을 습득해서 자립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돼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출원한 뒤에도 학생들이 꾸준히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기관들이 연계돼야 합니다. 그게 바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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