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비서’ 거부한 가장 논쟁적인 유엔총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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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출신 갈리 前총장 별세
옛 소련 해체기 평화유지 활동 확대… 美와 사사건건 충돌… 연임 실패 유일

직업외교관 출신이지만 외교적이지 않았다. 소련(현재의 러시아) 붕괴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과 정면으로 맞섰다.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이 됐지만 미국의 반대로 역대 총장(8명) 중 유일하게 연임에 실패했다. 유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무총장’으로 불리는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사무총장(6대·1992∼1996년 재임·사진)이 16일(현지 시간) 고국 이집트 카이로의 병원에서 숨졌다고 유엔이 발표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카이로대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대에서 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에 능통했다. 25년 넘게 대학 강단에 있다가 1977년 이집트 외교 담당 국무장관에 임명돼 1991년까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 등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1992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할 때만 해도 중동에 평화를 가져올 적임자로 국제사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유엔은 순탄치 않았다. 소말리아 르완다 보스니아 사태로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이 확장되던 시절이었는데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유엔의 개입에도 사태들이 악화되자 미국은 그의 무능을, 그는 미국의 독선을 비난했다. 미국이 유엔 분담금 14억 달러를 체납하자 “평화 유지란 개념은 미국 같은 강대국의 머릿속에만 있다”고 비난했다.

결국 199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투표에서 그의 연임안이 ‘14 대 1’로 부결됐다.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는 퇴임 후 자서전에서 “미국 같은 강대국도 (협상과 타협을 하는) 외교의 가치를 인정하는 줄 착각했다. 그러나 미국은 로마제국처럼 외교가 필요 없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한 인터뷰에선 “유엔 사무총장인 나를 직접 통제하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엔에선 그에 대해 ‘유엔의 독립성을 제고했다’는 찬사와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혹평이 엇갈린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유엔 역사상 가장 혼란스럽고 도전을 받았던 시기에 유엔을 이끌었다. 그의 헌신과 족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레이아 마리아 여사가 있고 자녀는 없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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