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도산 안창호 선생(사진)이 미국으로 건너간 목적과 당시 소회를 보여주는 새로운 자료가 발견됐다. 재미 학자인 장태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인종학과 교수가 지난해 10월 발견한 것으로 도산이 미 서부지역의 주요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인터뷰한 1902년 12월 7일자 기사다.
기사 제목은 ‘한국, 잠자고 있는 땅: 특이한 사람들, 낯선 관습들, 깨어나는 자각’이다. 도산이 1902년 10월 14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뒤 숙식을 신세 졌던 알레산드로 드루 박사(한국에서 8년간 의료선교 활동을 함)가 친분이 있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기자에게 선생을 소개해 인터뷰가 이뤄졌다.
기사에서 도산은 “미국에서 많은 것을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도산은 또 “한국인들은 지금 세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산은 자신이 미국에 올 수 있었던 건 호러스 언더우드(연희전문학교 설립자)의 조언과 독지가들의 지원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선 이 기사가 도산이 미국으로 건너가 신문물을 배우려 했다는 점과 당시 행적이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당시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한국과 지식인의 이야기를 미국의 주요 신문이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해 다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기사에는 ‘한국에는 귀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많고, 기독교나 가톨릭을 믿는 사람은 적다’거나 ‘결혼은 부모가 정해주는 사람과 해야 한다’ 등 한국의 사회상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각도 담겨 있다.
장 교수는 미국 내 첫 번째 ‘코리아타운’ 관련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자료를 발견했다. 도산은 1904년 로스앤젤레스 동부에 있는 리버사이드에서 초기 한국인 이민자들과 함께 한인촌을 건설했다. 도산은 이곳에서 한인들에게 교육과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교수는 11월 도산학회 세미나에서 도산의 리더십과 미국의 첫 번째 코리아타운 관련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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