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자기가 다니던 회사의 회장과 결혼한다. 회장은 여성보다 서른세 살 연상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곱지 않다. ‘사랑이 아닐 것’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최연매 김정문알로에 회장(56)을 향한 세간의 시선이 19년 전부터 그래왔다.
최 회장은 1997년 김정문알로에의 창업주인 고 김정문 전 회장과 결혼했다. 당시 최 회장의 나이 37세, 김 전 회장은 70세였다. 최 회장은 2005년 김 전 회장이 타계하고 이듬해 회장직에 올랐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14일 만난 최 회장은 자신이 선택했던 사랑에 당당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나이 차는 상관없었어요. 김정문 회장은 저를 절대 깨지면 안 되는 보석처럼 대해줬어요. 그런 사람이랑 살았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다시 살아도 그런 사람 또 만나기 힘들 겁니다.”
최 회장은 1991년에 충북 청주시 대리점 한 곳을 인수해 김정문알로에 영업에 뛰어들었다. 영업 능력을 인정받아 2년 후 청주지사장에 올랐다. 지사장이다 보니 김 전 회장이 지역을 방문할 때면 수행해야 했다.
1995년에 직원 교육장을 찾은 김 전 회장은 직원들 앞에서 시를 낭송했다. 최 회장에게 감성적인 김 전 회장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20대 때 중학교 국어 교사였던 최 회장은 시를 무척 좋아했다. 최 회장은 “시를 낭송하는 김 전 회장을 보고 나와 감성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최 회장은 김 전 회장과의 만남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그저 그런 사업가가 아니었어요. 부를 나누고 기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그가 믿는 기독교 신앙처럼 강한 사람이었죠. 그와 대화를 할수록 더욱 존경심이 커졌어요.”
그럼에도 33세의 나이 차는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최 회장 집안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97년 5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회장의 부인이 된 후 그가 ‘비단길’을 걸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결혼 후에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는 최 회장의 삶도 흔들어 놓았다. 모든 계열사의 재무 상황이 크게 나빠졌다. 김 전 회장이 계열사 채무의 연대 보증을 섰기 때문에 부부는 금융회사를 쫓아다니며 읍소해야 했다.
내조만 하던 최 회장은 2003년 부회장이 되면서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그가 처음 실시한 것은 ‘소통 경영’이었다. 당시 임원과 직원이 서로를 헐뜯고 본사와 대리점이 상호 불신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최 회장은 부회장실의 방문을 활짝 열어뒀다. 누구든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자신을 찾아와 대화하라는 뜻이었다.
다시 위기가 온 건 2005년이다. 12월에 김 전 회장이 별세하자 “김 회장이 없으니 회사도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사내외에서 흘러나왔다. 최 회장은 이를 악물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조직원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최 회장은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직원에게 뭉치자고 호소했다. 직원들이 따라줬고, 똘똘 뭉친 덕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5년 600억 원이었던 매출은 5년 후 9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최 회장은 올해 큰 도약을 꿈꾸고 있다. 최 회장은 “김 회장은 좋은 원료와 정직한 제조 공정을 통해 ‘소비자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확고한 가치를 회사에 심어줬다. 이제는 그 가치를 토대로 회사를 건강문화기업으로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유해물질이 덜 나오는 친환경 생활가전제품 판매를 곧 시작할 계획이다. 깨지지 않는 보석 같은 회사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그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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