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신부 스마일∼ 29년간 300쌍에 ‘웨딩마치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3일 03시 00분


서울 중구 사진관 운영 김종명씨… 다문화-저소득층 무료 결혼식 지원

29년 동안 형편이 어려운 부부의 결혼식을 도와준 김종명 박선희 씨 부부가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이 부부는 앞으로도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제공
29년 동안 형편이 어려운 부부의 결혼식을 도와준 김종명 박선희 씨 부부가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이 부부는 앞으로도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제공
“자 다 같이 박수치면서∼ 웃으세요!”

19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구민회관 3층 대강당.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6명과 정장 차림의 신랑 6명이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웃음을 이끌어낸 주인공은 중구에서 37년째 사진관(일지스튜디오)을 운영 중인 김종명 씨(65). 김 씨는 이날 스튜디오 문을 닫고 결혼식 진행자로 변신했다. 식장 꾸미기부터 하객맞이, 사진 촬영까지 1인 다역을 맡은 김 씨는 결혼식 내내 분주히 뛰어다녔다.

낮 12시 결혼식이 시작될 무렵 김 씨의 아내 박선희 씨(57)가 구슬땀을 흘리며 식장에 들어섰다. 목장갑을 낀 손에는 커다란 양초가 들려 있었다. 박 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미리 준비한 양초가 너무 짧아서 급하게 주변 가게에서 더 큰 양초를 사오는 길”이라고 밝혔다. 양초를 제자리에 꽂고 불을 켠 뒤에야 마침내 합동결혼식이 시작됐다. 주례는 이날 결혼식을 마련한 21세기사회봉사회 이사장 이설산 스님이 맡았다.

결혼식의 진짜 주인공 중 한 명인 신랑 김영희 씨(55)는 “이제 필리핀인 아내와 가족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며 기뻐했다. 김 씨 부부는 5년 전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정작 한국의 친지들에게는 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 씨는 “뒤늦게 결혼한다며 하객들을 부르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오늘 이렇게 다른 부부들과 함께 비용 부담 없이 결혼식을 올리니 마음이 편하다”면서 김종명 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김영희 씨를 비롯해 다문화, 저소득층 부부 6쌍이 오랫동안 미뤘던 결혼식을 치렀다.

‘동네 사진사’ 김 씨가 무료로 합동결혼식을 진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군대에서 사진병으로 복무하며 처음 카메라와 인연을 맺은 김 씨는 사진관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자신의 기술을 이용한 봉사활동에 눈을 돌렸다. 마침 무료 결혼식을 진행하던 이설산 스님이 그에게 결혼식을 돕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스님은 “서울 백련사에서 결혼식을 열다가 불자가 아닌 사람들의 요청으로 외부에서 결혼식을 열기로 하면서 실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며 “김 씨가 도와준 부부가 300쌍 정도 된다”고 말했다.

결혼식 비용은 21세기사회봉사회 측이 일부 지원하지만 사진 촬영과 액자 제작, 드레스 대여, 화장 등은 모두 김 씨가 준비한다. 합동결혼식을 한 번 치르면 1000만 원가량의 돈을 내야 한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김 씨는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들이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내 박 씨는 “무료 결혼식이 필요한 사람이 점점 줄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돈 때문에 아쉬움을 참고 사는 부부들도 많다”라며 “힘닿는 데까지 결혼식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진관#김종명#다문화#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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