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38년 ‘기자실 안방마님’ 떠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6일 03시 00분


박미란 기재부 사무관 6월 정년퇴임… 기획원 공보관실 별정직으로 시작
모신 경제부총리-장관만 36명… 6년전 승진땐 축하난 청사로비 채워

“기자실을 떠난다는 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 봐요. 호호호.”

38년간 경제부처 취재 현장을 지켜온 ‘전설의 기자실장’ 박미란 기획재정부 사무관(59·사진)이 6월 말 정년퇴임한다. 정부 부처 대변인실 소속이지만 ‘기자실 안방마님’으로 통하며 기자들의 취재편의 제공이 주 업무였던 터라 그의 은퇴 소식에 그가 몸담았던 기재부보다 언론계에서 더 아쉬워하고 있다. 5일 기자실을 떠나는 소감을 묻자 “3개월이나 남았는데 그런 걸 왜 물어보냐”며 어깨를 툭 쳤다.

박 사무관은 기재부와 언론계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1978년 1월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청사(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있던 경제기획원 공보관실(현 대변인실)에서 별정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 기재부로 간판이 바뀌는 동안 자리를 지켰고, 정부부처 최장수 기자실장 기록을 세웠다.

고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부터 유일호 현 부총리까지 그가 모신 부총리와 장관만 36명이다. 최경환 전 부총리가 지난해 7월 기재부 장기 근속자들을 불러 식사 대접을 했을 때 박 사무관도 ‘최 부총리 3년 선배’ 자격으로 자리에 참석했다.

기자실을 지키며 늘 장차관을 접하다 보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장차관 옆에서 일하니 힘 좀 쓰겠다’고 말하지만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행정고시 출신 엘리트가 주류인 경제 부처에서 별정직 여직원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브리핑룸에 음료수가 엎질러지지 않았는지, 마이크가 제대로 켜지는지 확인하는 것은 온전히 박 사무관의 몫이었다. 세종청사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던 초기,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을 알아내 기자들의 식사를 챙긴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음지에서 묵묵히 고생한 보람은 컸다. 2010년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자 역대 부총리·장관과 공공기관장, 은행장, 언론사 대표들이 청사 로비를 가득 채울 정도로 축하 난을 보내 “차관급 화환은 놓을 자리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보도시점 제한(엠바고)을 어기거나 기자실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는 기자들에게 불호령을 내리기도 하지만 보도자료를 직접 복사해 1분 1초가 아쉬운 기자들의 책상에 배달해주는 등 세심한 배려로 인기가 높았다.

퇴직 후 계획은 세워놓지 않았다. ‘기자들과 정년까지 일하고 싶다’는 소원은 현실이 됐다. 박 사무관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즐겁고 재밌게 지내겠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38년간 조직에 기여한 공을 인정해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다.

세종=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박미란#기재부 사무관#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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