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퍼주고 장학금 퍼줄때 가장 행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2일 03시 00분


高大주변서 31년간 하숙집 최필금씨 지금까지 2500여명 거쳐가
2010년부터 2억5000만원 기부 “예전엔 부대끼며 가족처럼 지내… 요즘은 원룸형 많아져 아쉬워요”

고려대 인근에서 31년 동안 하숙집을 운영해 온 최필금 씨가 고려대 농구부 주장이었던 오리온 이승현 선수의 유니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고려대 인근에서 31년 동안 하숙집을 운영해 온 최필금 씨가 고려대 농구부 주장이었던 오리온 이승현 선수의 유니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서울 성북구 고려대 법대 후문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 현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자 10m²(약 3평) 남짓한 거실이 나왔다. “매일 아침 우리 가족과 하숙생 10명이 여기 둘러 앉아 아침을 먹었죠.” 1985년 이곳에서 시작된 최필금 씨(60·여)의 하숙집 인생이 31년을 넘었다.

이달 초 만난 최 씨는 하숙을 처음 시작한 곳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화장실 유리문에는 누렇게 바랜 신문지가 붙어 있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최 씨의 딸이 “오빠들에게 씻는 모습이 비치는 게 남사스럽다”며 붙인 것이라고 했다. 최 씨는 오래돼 너덜거리는 테이프 한쪽을 손으로 꾹 눌러 붙였다.

최 씨는 자신의 하숙집을 거쳐 간 학생이 어림잡아 2500명은 될 거라고 했다. 하숙을 쳐 두 자녀를 키워낸 최 씨는 학생들에게 받은 도움에 보답하는 뜻으로 2010년부터 고려대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부금액은 2억5000만 원을 넘었다.

현재 최 씨는 번듯한 건물 4채에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30여 년 전을 그리워했다. “그때는 하숙생들과 살을 맞대며 ‘한가족’처럼 지냈거든요. 매일 아침을 함께 먹고 저녁이면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였지요. 새 하숙생이 오는 날이면 ‘입방식’도 열어줬어요.” 그때마다 케이크를 사와 통기타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던 조덕현 씨(49)는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됐다. 매일 시위 현장에 달려가 최 씨의 속을 썩였던 문홍기 씨(48)는 한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전무가 됐다.

31년 전 하숙을 시작했던 낡은 공간에는 현재 중국인 유학생 한 명만 살고 있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요즘 학생들은 원룸형 하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전처럼 학생들과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 두 번 학생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식사 준비에 더욱 공을 들인다고 했다.

학생들은 그런 최 씨에게 각자의 방식대로 고마움을 전달했다. 고려대 농구부 주장이었던 이승현 씨(24)는 2014년 ‘고연전’에서 승리한 뒤 4년 동안 아침밥을 챙겨준 최 씨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선물했다. 이 씨의 자필 사인이 담긴 유니폼은 하숙집 식당에 보물처럼 걸려 있다. 그 옆에는 한 하숙생이 남긴 편지가 액자에 보관돼 있었다. ‘7년 가까이 아주머니 밑에서 밥을 먹은 또 하나의 아들의 도리로 당연히 드려야 할 글’로 시작한 편지는 A4 용지를 가득 채웠다.

좋은 추억만 있을 줄 알았던 최 씨에게도 잊을 수 없는 상처가 있었다. 3년 전 하숙집에 불이 나 한 여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제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떨려요.” 최 씨는 말끝을 흐렸다.

하숙생들의 저녁식사가 시작되는 오후 5시. 최 씨는 서둘러 하숙집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메뉴는 닭백숙이었다. 구수한 냄새가 식당을 가득 채웠다. 최 씨는 학생들에게 큼직한 닭다리를 골라 퍼주며 “부족하면 더 먹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학생들 밥을 퍼줄 때 가장 행복해요.” 오후 6시, 하숙생들이 몰려들자 최 씨의 손길은 더 바빠졌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고려대 하숙#기부#이승현 선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