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지만 경력이 화려하다. 2013년 스위스 국제 바순·오보에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아카데미에도 합격했다. 베를린필과 함께 무대에도 올랐다. 지난해 하노버 슈타츠오퍼에서 오보에 수석으로 활동하던 그는 올해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에 입단해 8월부터 제2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을 담당한다. 한국 연주자들이 취약한 것으로 꼽히는 관악 부문에서 이룬 성과다.
2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교향악축제’ 협연을 위해 귀국한 그를 20일에 만났다. 40대1의 경쟁률을 뚫고 RCO에 들어간 그는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이제 시작이니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좋은 팀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요.” 그는 무엇보다도 ‘잘 어울리는’ 것을 강조했다. 한 눈에 봐도 서글서글한 그의 성격이 짐작되고도 남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보에를 손에 잡았다. 아버지는 오보이스트 함일규 중앙대 음대 교수. 직접 아버지 밑에서 배우지는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한다”였다. 그 전에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배웠지만 재능도 별로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다만 오보에는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그였다.
그는 오보에로 인생을 걸고 싶었다.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홀로 독일로 가 입학허가를 얻어왔다. “사실 제가 오보에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열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열정이 있어 실력이 따라온 케이스죠.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열정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최근 아버지도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예전에는 조언을 받았던 그였지만 이제는 서로 음악인으로서 ‘교류’한다. 아버지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것이 아닌가 묻자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노코멘트’ 해도 되나요? 당연히 제가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잘하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는 것이 아버지에요. 아버지의 시대와 제 시대는 완전히 달라요. 예전에는 배우기도 쉽지 않았고 악기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때에요.”
그는 국내외에서 연주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취미는 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카메라를 들고 거리 사진이나 풍경 사진을 찍는다. 최근에는 필름 카메라도 구입했다. 하지만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은 역시 오보에를 입술에 대고 부는 부분인 리드를 깎는 일이다. 오보에 소리는 리드에서 70%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항상 리드를 들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직접 깎는다. “사실 오보에는 연습하는 시간과 리드 깎는 시간이 거의 반반 정도예요. 그 정도로 리드 깎는 일이 중요해요. 습도, 온도 등 환경을 생각해야 하고 미국 또는 유럽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 달라져요. 누가 제 방에 오면 목공예를 취미로 하는지 알아요. 책상에는 나무 연장이 펼쳐서 있어서요.”
오케스트라, 독주, 실내악 등 종횡무진하고 있는 그는 최근 관악주자 5명이 함께 모인 ‘바이츠 퀸텟’ 활동에도 애정을 보였다. 리에 코야마(바순), 조성현(플루트), 김한(클라리넷), 리카르도 실바(호른) 등 관악주자들만 모여 6월 16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도 갖는다. “저는 앞으로의 음악 활동도 오케스트라, 실내악, 독주 등 가리지 않고 적절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현재 위치보다 행복지수가 더 중요하다는 그는 ‘애 어른’같았다. 그는 자신의 행복지수가 10점 만점에 8점이라고 밝혔다.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고민요? 고민이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현재 저는 없어요. 어떻게 하면 더 연주를 잘 할까 하는 정도의 고민이 있긴 하죠.”
그가 밝힌 목표는 다른 연주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애 어른’같다고나 할까. “땅 위로 솟은 돌은 쉽게 깎인다고 해요. 저는 한때 반짝이는 음악가보다는 내공을 쌓으면서 꾸준히 활동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사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정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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