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前 아사히신문 주필
1995년 월드컵 공동개최 제안 사설… 신사참배 고이즈미 공개 비판도
본보에 6년간 ‘동경소고’ 칼럼 연재
“30년 이상 한국은 내 마음의 한가운데 있었다. 한국에서나 한일 간에 문제가 생기면 내 일처럼 마음이 아팠다.”(2013년 1월 26일자 동아일보 인터뷰)
동아일보에 기명 칼럼 ‘와카미야의 동경소고(東京小考)’를 집필하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사진)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28일 타계했다. 향년 68세.
와카미야 전 주필은 이날 오후 베이징(北京) 시내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8, 2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심포지엄에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던 그가 오전 일정에 나오지 않자 동행한 일본 국제교류센터 직원이 방에 찾아가 보니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사인(死因)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중국 공안당국이 조사하고 있다. 중국 공안은 “외상이 없어 병사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비보를 접한 가족들은 이날 밤 급히 중국으로 출발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언론인으로 꼽히는 고인은 194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70년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 아사히신문에 입사했다. 요코하마·나가노 지국과 정치부 등을 거쳤다.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9년과 1980년 취재차 한국과 북한을 방문한 후였다. 그는 상반된 두 경험을 하면서 “한반도 문제는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한국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그는 이듬해인 1981년 9월부터 1년 동안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한국어를 배웠다.
연수 후에는 논설위원, 정치부장, 논설주간, 주필 등을 지냈다. 1879년 아사히신문 창간 이후 6번째 주필이었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든 한일 관계 진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고인은 1995년 아사히신문에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제안하는 사설을 썼고 이는 공동 개최가 실현되는 밑거름이 됐다. 2005년에는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인정하되 섬 이름을 우정의 섬으로 하자’는 몽상(夢想)을 밝힌 칼럼을 썼다. 그는 이 칼럼 때문에 우익들의 표적이 됐고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2006년에는 요미우리신문의 보수 논조를 이끌어 온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회장과의 대담을 기획해 아사히신문사가 발행하는 월간지 ‘론자(論座)’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함께 비판해 화제가 됐다.
2013년 정년을 맞은 후에는 다시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 와서 한국어를 공부했으며 동서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지도했다. 지난해에는 저서 ‘전후 70년 보수의 아시아관’으로 일본의 권위 있는 학술상인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상을 수상했다.
2010년부터 동아일보에 ‘와카미야의 동경소고’라는 고정 칼럼을 게재하며 한일 관계에 대한 다양한 제언을 해 왔다. 고인은 24일에도 한국에서 한중일 화해, 공존, 공영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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