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6·25전쟁때 한국 공군 첫 출격한 김구 선생 차남 김신 前공군참모총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0일 03시 00분


전쟁나자 日 건너가 美무스탕機 인수… 19차례 출격… 평양철교 폭파 유명
공군창설 기여… 교통부장관 등 지내

1950년 6월 26일 미 공군으로부터 F-51 전투기 10대를 인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조종사들이 미군 교관으로부터 조종 교육 등을 받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고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 공군 제공
1950년 6월 26일 미 공군으로부터 F-51 전투기 10대를 인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조종사들이 미군 교관으로부터 조종 교육 등을 받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고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 공군 제공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이자 공군 사상 최초 출격의 주인공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예비역 중장)이 19일 0시 2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2년 9월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김 전 총장은 두 돌이 못 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할머니와 함께 돌아왔다가 12세 되던 해에 다시 중국으로 탈출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상권은 두 아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것이기도 하다. 김구 선생은 “너희들이 성장하여 아비의 일생 경력을 알 곳이 없기 때문에 이 일지를 쓰는 것”이라며 독립운동가의 힘든 길을 간접적으로 담기도 했다. 김 전 총장은 1937년 일본 공군이 중국 난징을 폭격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공군 조종사가 돼 조국 독립에 기여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인 김구 선생(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과 함께 활동하는 임시정부 요인 간 비밀연락 임무 등을 하면서 조종사의 꿈을 키웠다.

1944년 중국 공군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947년 미국 랜돌프 공군비행학교를 수료하며 조종사의 꿈을 이뤘다. 귀국 이후엔 육군항공대에서 활동하며 1949년 공군 창설에 기여했다.

김 전 총장은 6·25전쟁 발발 다음 날인 1950년 6월 26일 고 장성환 전 공군참모총장, 고 이근석 당시 대령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전투기가 한 대도 없던 우리 공군에 미군이 지원한 F-51 무스탕(머스탱) 전투기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7월 3일 우리 공군 최초로 출격했다. 전쟁 중 전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19회 출격하며 지리산 공비토벌 항공작전(1951년 10월)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1952년 1월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장으로 재임할 당시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지휘해 철교를 폭파시키기도 했다. 유엔군이 500회 넘게 출격했지만 실패했던 작전을 직접 성공시킨 것이다.

휴전 이후 공군 행정참모부 부장, 참모차장, 6대 공군참모총장(1960∼1962년)을 역임했다. 1962년 예편한 뒤 주대만 대사, 교통부 장관,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내다 1988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2000년부터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및 명예회장으로 일했다. 정부는 그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진(전 대한주택공사 사장)·양(전 국가보훈처장)·휘(전 에이블리 대표) 미 씨 등 3남 1녀와 사위 김호연 씨(빙그레 회장·전 국회의원)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1일 오전 6시 반,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이다. 02-2227-7550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김구 선생 차남 김신#前공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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