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4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김매자 안무의 ‘심청’에서 심봉사 역할을 맡았다. 무용단 4년 차인 그로서는 깜짝 발탁이었다. “제가 캐스팅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튀는 성격도 아니라 캐스팅 현장에서 그냥 조용히 있었어요.”
그의 춤을 본 김매자는 심봉사 역할로 그가 아니면 안 된다며 누구보다 가장 먼저 그를 캐스팅했다. 그의 춤은 무용수 특유의 버릇이나 습관이 없는 백지 같은 춤이라는 게 김매자의 평가였다.
30대 초반의 심봉사는 뒤늦게 무용에 입문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그는 축구를 사랑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전통무용 안무가 이종호)의 권유로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렸다. 국립국악고 무용과에 합격하면 무용을 하고, 떨어지면 계속 축구를 하겠다고 아버지와 약속한 것이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처음부터 원한 길은 아니었지만 춤을 출수록 그는 흥미를 느꼈다. 친구들보다 뒤늦게 배운 만큼 따라잡기 위해 방학도, 주말도 없이 연습에 몰두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들어갔다. 2007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뒤 그는 다시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국립국악원 무용단에 들어가 인턴 1년, 준단원 2년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 국립국악원 지도위원이었던 아버지의 후광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했다. 국악원에서 나와 국립무용단에 지원한 것이다. 경쟁률이 30 대 1이었지만 결과는 합격.
“저는 전통춤의 보전보다는 창작춤을 하고 싶었어요. 국립무용단에 가겠다고 한 뒤 아버지와 6개월간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제 일생일대의 마지막 반항을 한 셈이죠.”
그는 최근 국립무용단의 주역을 줄줄이 꿰찰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심청’ 공연에서 선보일 심봉사 역할에도 다른 해석을 가미할 계획이다. “심봉사는 아픔이 많은 아버지예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심봉사는 딸이 바다에 몸을 던지게 한 나쁜 아버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만의 다른 시각을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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