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를 만나러 전남 강진군 백련사 뒤편의 토담집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떠올린 말이다. 지난달 29일 오후다. ‘복숭아와 자두는 말하지 않아도 (꽃향기와 열매가 좋아) 그 밑으로 저절로 길이 생긴다’고 하는데, 기자를 산속으로 오게 만든 손 전 대표가 바로 그렇지 않은가.
손 전 대표를 찾아간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5월 19일 일본 게이오(慶應)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좀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였고, 또 하나는 강연에서, 그리고 기자들에게도 언급한 ‘새판 짜기’의 의미를 묻고 싶어서였다. 즉 하산을 해서 대선국면에 뛰어들 것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손 전 대표는 인터뷰 조건으로 ‘국내 정치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대못을 박았다. 국내 정치에는 당연히 하산 여부도 들어간다. 고민 끝에 ‘불평등계약’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물어볼 수 없으므로.
만나자마자 슬쩍 약속을 깨뜨렸다. “좋은 데 사셔서 그런지 매우 건강하신 것 같다. 세상은 병들어 가는데 언제까지 이런 곳에 계실 생각이냐.” 그러자 “세상이 병들긴 뭘…”하며 곧바로 “백련사 큰스님이 직접 덖은 차나 한잔하자”고 말머리를 돌렸다. 의외로 가드가 단단했다. 일단 일본 얘기로 들어갔다.
그가 게이오대에서 한 강연 제목은 ‘한반도 문제와 일본의 역할’이다. 그러나 앞부분의 4·13 총선에 대한 평가를 빼면, 북핵문제와 미중관계, 남북문제와 일본, 한일관계 등 남북한과 일본, 미국, 중국의 역할을 망라하고 있다. 즉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동북아질서 속에서 한국의 외교를 고민했다는 것이 더 적확하다(그가 이번에 일본을 방문하는 데는 본보 도쿄특파원 출신인 이낙연 전남지사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일본에서 강연을 하게 된 경위는….
“지난 3년간 한일관계가 아주 나쁘지 않았나. 한일관계가 그렇게 돼도 되나 하는 염려가 있었다. 한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65년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한 학생운동이 한일회담 반대 시위였다. 그러나 정치권에 들어오고, 경기지사 등을 하면서 일본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정치를 떠났지만 한일관계 개선에 조금이라도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강연 기회가 생겨서 갔다 오게 됐다.”
손 전 대표는 “이번에 일본에 가 보고 한일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안 되고,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시각은 참신하고 중요하다. 일본의 ‘지금’을 한국에 유리하게 바꾸라고 강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어서다. 까딱하면 ‘친일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는 그 이유로 “한국도 이제 크고 성숙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빠져있을 때 한국은 급성장했다. 이제 한일은 거의 수평적, 대칭적 관계까지 올라왔다. 근본적인 문제는 확실하게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에 있지만, 그렇다고 안 하는 것을 언제까지 자꾸 하라고 강요할 것인가.”
그의 강연 원고를 읽고 인터뷰를 하면서 산속에서도 꽤 맥을 잘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그가 정치 입문 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까지 지낸 정치학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건 뭐, 참. 위안부 문제, 과거사 문제, 충분히 제기할 만하다. 그래도 리더는 다른 길을 열어놔야 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 안 되면 (정상회담) 안 된다며 3년 지나갔다. 지난해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개운치가 않다. 당사자나 관련 단체, 야당을 설득한 것도 아니고, 지금도 억지로 끌려가고 있다. 난처할 것이다. 계속 단추를 잘못 끼워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하자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전제가 달리긴 했지만 부정적이었다.
“국가간 합의를 했고, 국제사회도 엔도스(추인)를 많이 했는데. 정부간 합의를 자칫 (파기하면)…, 국제적으로 우스운 나라가 되면 안 되지 않나. 적극 보완하고, 설득해야 한다. 우선 당사자들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간 차원의 역할도 높여 주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서 보듯, 역사문제에서 미국이 일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그 자체가 미일관계의 현주소다. 우리로서는 반가울 게 없지만 그게 현실이다. 미국에 대한 일본 외교의 승리로 판단해야 한다. 또한 이는 미일외교의 긴밀성뿐만 아니라, 미일 대(對) 중국이라는 동북아 대결구도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꼼짝 못한 것 아니겠는가.”
오바마가 히로시마를 방문했듯이 아베 신조 총리가 위안부를 만나 위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떠냐는 질문에 손 전 대표는 “아베 총리가 그럴 사람이냐. 상대를 보고 해야지”라고 단칼에 잘라 버렸다.
―일본은 한국이 중국에 경사돼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중국과 가까이 있고, 한국 경제는 이제 중국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 그런 현실을 미국과 일본에 적극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중국하고만 잘되면 잘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도 없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한국은 미일중러가 각축을 벌이는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일중의 역할을 묻기 위한 마중물 성격이었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남북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원칙을 앞세워도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 핵 폐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 아닌가. 대북 강경일변도의 정책은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것 같은데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북한이 그렇게 쉽사리 붕괴할 리가 없다. 중국이 있는 한.”
손 전 대표는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마지막 핫라인까지 끊은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제재 협조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건 박근혜 정부의 입장이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동포나 민족이 되어야 한다. 북한은 남이 아니다. 두들겨 부술 대상이 아니라 항상 같이 가고 포용해야 한다.”
그는 이 대목에서 독일 통일의 이념적 토대가 된 ‘동방정책’의 설계자 에곤 바를 언급했다. 에곤 바처럼 우리도 ‘접근을 통한 변화’를 믿고 북한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손 전 대표는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한 4가지 전략적 포인트를 제시했다.
첫째, 미국과 일본의 협력을 견고히 하는 동시에 중국의 지지도 얻어내야 한다. 중국에는 반드시 북한 붕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둘째, 북한 체제의 보장을 약속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구상이 필요하다. 셋째, 북한이 자력갱생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대북 지원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넷째, 대화를 재개해 이상의 구상을 북한에 제시하고 미국, 일본, 그리고 주변국들이 북한이 새로운 행동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손 전 대표의 생각을 재해석하면 이런 것 같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하다. 중국은 한국에도, 북한에도 중요한 국가이므로 자주적인 입장에서 대중 외교를 펼쳐야 한다. 동시에 한국 안보의 근간인 한미 동맹과 한미일 동맹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중일은 새로운 동북아공동체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현안이 북한 문제이므로 이를 통해 외교적 영역을 넓혀야 한다.
손 전 대표의 외교 구상을 평가할 만한 시점은 아니다. 다만 현재 북한에 대한 그의 시각은 미국, 일본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 또한 한국 외교는 예전보다 많아진 변인과 어려워진 환경 속에 놓여있는 게 분명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지금까지 한 말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질문의 뜻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이 정도로 끝냅시다”라고 했다. 기자는 “진짜로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것이냐” “새판이 필요하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계속해서 질문했다. 그러나 그는 “수고가 많았다”거나 “허허”하며 넘어갔다. 결국 ‘국내 정치’에 대한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데는 실패했다.
손 전 대표의 토담집에서는 강진만 오른쪽으로 멀리 완도군의 고금도가 보인다. 고금도에는 노량해전에서 쓰러진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임시로 안치했던 충무사와 가묘가 남아 있다. 손 전 대표도 언젠간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그때를 알아내지 못했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2016년 5월 왜 그렇게 입을 꼭 다물었는지를 묻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기자의 완패를 호도하는 것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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