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두 명의 심청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30년 전인 1986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에서 초대 심청을 맡았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53). 당시 이 작품은 국내 창작 발레로는 최초로 해외에 진출해 15개국 40여 개 도시에서 250여 차례나 무대에 올려졌다. 문 단장은 이 역할로 100여 차례나 공연했다. 또 한 명의 심청은 10∼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0주년 ‘심청’ 무대에서 처음으로 이 역할을 맡은 홍향기(27)다.
‘심청’은 문 단장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다. 전체적 안무는 미국 안무가인 에이드리언 댈러스가 담당했다. 하지만 문 단장이 오페라와 판소리에 기초해 자신만의 예술관과 동작을 입혔다. “제가 23세 때 처음 심청을 맡았어요. 없던 것을 새로 만들다 보니 군데군데 안무가 빈 부분도 있었고, 제가 생각하는 심청에 대한 것도 있어서 동작을 많이 만들었어요.”(문 단장)
지금의 심청은 ‘문훈숙표 심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마지막으로 이 역할을 맡은 뒤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문 단장은 무용수들을 직접 챙기며 호흡과 표정 하나하나를 가르쳤다. “공연을 앞두고 단장님이 연습실에 와서 동작에 대한 표현과 기술 등에 대해 조언할 때가 많아요. 단장님이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던 작품인 만큼 무용수들도 많이 부담돼요.”(홍향기)
심청은 30년 동안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무용수들에게도 심청은 꼭 해보고 싶은 역할 중의 하나로 꼽힌다. 문 단장은 세월이 지나도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로 ‘효’ 사상을 꼽았다. “대부분의 발레 작품은 남녀 간의 사랑을 다뤄요. 심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부모에 대한 사랑을 담았어요. 심청을 본 뒤 눈물을 흘리는 해외 관객이 많았어요. 그만큼 ‘효’는 인류 보편적인 정서예요.”(문 단장)
초등학생 때 처음 심청을 봤다는 홍향기는 이 작품에 대해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발레에 관심이 없던 아버지가 2013년 우연히 이 작품을 본 뒤 발레단의 모든 공연을 챙겨서 볼 정도로 팬이 됐어요. 심청을 보고 발레에 눈을 떴대요. 이번에 제가 심청 역할을 맡는다니 그 어떤 때보다 좋아하셨어요.”(홍향기)
지금까지 많은 무용수들이 심청을 맡았지만 각자 생각하는 ‘최고의 심청’이 있다. “연기와 기술, 음악성 등 3박자를 갖춘 발레단의 전 수석무용수 박선희가 최고였어요.”(문 단장) “수석무용수인 황혜민 언니는 항상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심청을 연기해요.”(홍향기)
이번 30주년 무대에는 문 단장을 비롯해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박선희, 전은선, 강예나 등 역대 심청을 맡았던 무용수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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