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열린 해외 한인검사 초청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고려인 출신의 오 알렉산드르 카자흐스탄 대검찰청 인사국장. 고려인 출신 검사가 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오 안톤(1900년생)은 오 옐레나(1910년생·여)와 결혼해 오 그리고리(67)를 낳았고, 손 블라디미르와 윤 바르바라 사이에서 손 스베틀라나(66·여)가 태어나….’
신약성경을 읊듯이 가족관계를 훑어본 뒤 ‘고려인’ 출신 오 알렉산드르 카자흐스탄 대검찰청 인사국장(45·검사장급)과 마주앉았다. 두툼한 홑꺼풀의 눈, 굳게 다문 입술까지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지만 그는 “정말 아는 한국 단어도, 한국 노래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권순철)이 5일부터 2박 3일간 주최하는 ‘한인검사 학술세미나’에 처음으로 공식 초청된 고려인 출신 검찰인 그를 서울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려운 시절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들은 바가 거의 없습니다.”
오 국장은 1937년 옛 소련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에 따라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한국인들의 후손인 고려인 출신이다. 한국 출생인 증조부모가 구한말 러시아 극동으로 이주했고, ‘강제이주 1세대’인 오 국장의 조부모는 카자흐스탄에 정착해 대부분의 고려인처럼 쌀과 채소, 수박 등을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강제이주 이듬해인 1938년 모든 고려인 교육기관은 폐쇄됐고 한국어로 된 책은 절판됐다.
오 국장은 어릴 적 한 번쯤 접했을 법도 한 강제이주의 아픈 역사를 상세히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조부모께서) 어려운 시절에 대해 굳이 말씀을 잘 안 하셨죠.” 그가 알고 있는 ‘조상의 땅’ 한국은 카자흐스탄 전시관과 박물관에서 본 유물들,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역사조각들이 전부다.
자라면서 소외감이나 고립감은 느끼지 않았을까. 오 국장은 “카자흐스탄은 130여 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나라다. 개인이 지식을 쌓아올리고 노력했는지를 최우선으로 평가하며 민족은 2차적인 고려사항”이라고 답해 차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릴 때부터 고려인이라는 특수성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것이 사실이고, 역사성을 인식했던 게 많은 자극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들이 한국 전통혼례, 돌잔치, 회갑연을 치르고, 김장은 물론이고 고유 음식도 세대에 걸쳐 전한다고 귀띔했다.
현재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은 약 11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기업, 학계, 법조계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오 국장처럼 검찰에 몸담고 있는 고려인만 해도 25명이고, 헌법재판소장과 법무부 장관도 배출했다. “1950년대 중후반 카자흐스탄 내 정치적 전환기를 겪으면서 고려인들이 교육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해 일군 성과”라며 “할아버지 세대의 강제이주는 매우 큰 비극이고 아픔이지만 그 이후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역사는 새로운 디아스포라(흩어진 민족) 세대가 확립한 성장기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 국장은 1993년 예카테린부르크 우랄 과학기술대 무선공학과를 졸업한 뒤 검사로 투신해 22년째 재직 중이다. 13년간을 대검에서만 근무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지난해 인사국장에 임명됐다. 변호사인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법조인을 꿈꿨던 그는 지금도 ‘공평함’을 최고의 가치로 꼽는다. 한 나라의 검찰 인사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른 뒤 더욱 그 가치를 절실히 느낄 법한 그는 “공평성은 모두를 납득시키는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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