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세종. 세종은 나에게 ‘아!’란 감탄사와 느낌표 없이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이에요. 세종은 나의 신이고 한글은 나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고은 시인(83)이 26일 한국 문학과 한국어의 미래를 논하며 “나라가 있어 조국이라 하고 말이 있어 모(母)국어라 한다”며 “태중(胎中)에서부터 듣는 한국어는 곧 어머니의 말이자, 우리 존재의 시작부터 끝까지 동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이날 서울 마포구 베스트웨스턴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재외 한국어 교육자 국제학술대회’의 기조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우선 70여 명의 재외동포 한국어 교육자에게 “바다를 건너 조국을 싣고 고국을 인식시켜 주고 있는 여러분께 참 감사하다”며 “대한민국, 북한의 우리 동포와 더불어 해외 동포 여러분이야말로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삼위일체”라고 높였다.
고은 시인은 “7500만의 화자(話者)를 가진 한국어는 화자 기준 상위 15개어 중 12위의 언어”라며 “닭이 우는 소리, 바람 소리, 천둥번개 소리 등 사물의 소리를 가장 바르게 전달하는 것 또한 한글”이라고 말했다. 또 “이 같은 ‘정음(正音)’의 ‘나랏말쌈’으로서 한글은 정말 멋진 언어”라고 말했다.
그는 “한글은 태생 직후부터 업신여김을 받으면서도 막강했던 중국어, 몽골어 사이에서도 죽지 않은 목숨이 질긴 언어”라며 “근대에 와서는 일제에 의해 망가지는 수난을 당한 기구한 팔자의 언어이다. 그 속에 우리 민족의 피와 눈물, 한이 다 들어있다”고 했다. 고은 시인은 “그런 면에서 언어는 인간 정신의 핵심이자 혼의 기호”라며 “언어가 있어서 기억하고, 또 기억이 있어서 언어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고은 시인은 한국어를 계승하기 위해 북한과 함께 ‘우리 겨레말 사전 남북 공동편찬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핵이며 사드며 북한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어려움이 많지만 나는 기어이 해낼 것”이라며 “이런 갈등은 일시적인 것이고 우리가 죽은 뒤에는 이런 일들은 다 지나고 남북은 하나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문학이라는 것은 모국어의 공간에서 모국어의 시간을 찾아내는 언어 행위”라며 “단테가 라틴어를 거부하고 토스카나어로 신곡을 써 이탈리아어를 세계 수준에 올려놓았듯 한국 문학 또한 한국어를 세계의 언어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이날 팔순을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2시간에 걸쳐 재치 있는 농담을 곁들인 열띤 강연을 펼쳤다. 그는 자리에 모인 해외 동포들을 위한 시를 골라 세 편이나 직접 낭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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