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무동력 요트일주 김승진씨… 부산 국립해양박물관서 전시
“2년 후 세계일주대회 출전 계획… 50대 도전, 요트만 한게 없어요”
“바람이 부네요. 전 이런 날씨를 만나면 힘이 납니다.”
푹푹 찌는 더위가 이어지던 이달 2일 오후. 갑자기 후끈한 바람이 도시를 감쌌다. 하늘이 찌뿌듯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비바람이 몰아쳤다. 요트 정박장인 서울 영등포구 ‘서울마리나’에서 요트 탐험가 김승진 선장(54)을 만난 직후였다.
바다에서 엔진 없는 요트를 모는 그에게 바람은 유일한 동력이자 동반자다. 이날도 마치 그가 바람을 몰고 온 듯했다. “날씨 좋죠? 육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요트를 타는 사람들에겐 이런 날씨가 좋은 날씨예요.”
김 선장은 지난해 5월 한국 최초로 무동력, 무원조 요트 세계 일주를 성공해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2014년 10월 충남 당진시 왜목항에서 출항해 바람의 힘만으로 210일간 4만1900km를 누빈 대장정이었다. 의지할 건 오직 길이 13m짜리 요트 ‘아라파니호’뿐이었다. 이 요트에서 별을 보거나 생선을 잡아 배를 채우거나 함께 파도와 싸웠다.
그랬던 아라파니호와 그가 지난달 26일 이별했다. 부산 국립해양박물관이 한국 최초의 세계일주 기록을 세운 아라파니호를 전시 목적으로 김 선장으로부터 구입했기 때문이다. 김 선장은 2010년 크로아티아에서 아라파니호를 살 때 지불했던 금액을 받고 애지중지하던 요트를 박물관 측에 넘겼다. 세계 일주 때 사용했던 밥그릇과 일기장, 항해 도구들은 무상으로 기증했다. 국립해양박물관은 9일부터 야외 전시장에서 그 배를 전시하고 있다. 동고동락했던 요트를 ‘은퇴’시켰지만 그는 오히려 잘됐다고 말했다. “아쉽긴 하지만 요트도 수명이 있는데 배가 더 상하기 전에 영구 보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배를 몰았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죽겠지만 그 배는 육지에서라도 영원히 남으니까요.”
세계 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뒤 그는 1년간 강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올 5월에 요청받은 강연만 25회였다. 세계 일주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항해를 중단한 건 아닌지 궁금했다.
“이미 다음 세계 일주에 쓸 요트를 봐 뒀어요. 올 10월 중순에 크로아티아에 가서 요트를 산 뒤 그걸 타고 한국으로 돌아올 겁니다. 2018년에 있을 세계 일주 대회를 준비해야 하거든요.”
이번에 그가 도전하는 세계 대회는 기록 싸움이다. 무동력선으로 스페인을 출발해 적도를 두 번 거쳐 돌아오는 노선이라고 한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한국인이 정상급으로 올라설 때까지 끊임없이 바다로 나갈 각오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적지 않은 나이가 거친 바다에서 요트를 모는 데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그렇지만 그는 “요트는 50대 나이에 세계 최고를 넘볼 수 있는 스포츠 종목”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해 무동력 요트 세계챔피언이 56세였어요. 요트는 인내심과 상황 판단 능력이 젊은 투지보다 중요합니다. 바람을 읽고 기후를 읽고 내 배의 컨디션을 읽어야 하는데 이게 다 경험에 나오는 거거든요. 회사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조직과 사람을 관리하고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참아온 중장년 은퇴자들이 경험을 살려 도전할 수 있는 스포츠인 셈이지요.”
그에게 요트는 ‘중년의 로망’ 이상이다. 그는 “더 많은 중년들이 요트와 같은 종목에서 내 행복이 뭔지 찾아가며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가 하늘을 흘깃 보더니 “비바람이 곧 그치겠네요”라고 했다. 먹구름의 경계가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10분쯤 지나자 그의 말처럼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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