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복싱엔 완득이… 무에타이엔 얄이가 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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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고교생 국가대표 김얄… 친구들 놀림에 한때 방황했지만
무에타이 만나며 삶의 목표 생겨… “세계 최고수와 당당히 겨루고 싶어”

방학이지만 하루도 운동을 멈추지 않는 김얄 군이 3일 서초고 체육관에서 훈련하던 중 자신 있어 하는 오른손 펀치를 선보였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방학이지만 하루도 운동을 멈추지 않는 김얄 군이 3일 서초고 체육관에서 훈련하던 중 자신 있어 하는 오른손 펀치를 선보였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온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과 입에서 나오는 가쁜 숨소리만 느껴질 때 얄이(18)의 오른팔이 번쩍 들렸다. 그때야 들려오는 함성. “우와아아아!!!”

얄이는 목에 걸린 금메달을 봤다. ‘72kg 우승 1위 김얄. 3월 26일’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얄이는 무에타이(무아이타이) 국가대표 선수다. 무에타이는 올림픽, 아시아경기 종목이 아니다.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해 각종 국제대회가 열린다. 여기에 나가려면 대한무에타이협회가 1년에 두세 번 치르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해야 한다. 얄이는 2015년 3월 처음 국가대표가 된 후 올해 6월까지 다섯 번 연속 국가대표가 됐다.

2012년 말, 우연히 본 ‘컨텐더 무에타이’라는 프로그램은 얄이 인생을 바꿨다. 16개국의 무에타이 국가대표 선수들이 나와 1위를 뽑는데 태극 마크만 없는 게 얄이를 자극했다.

첫 경기에서 얄이는 완벽하게 깨졌다. 로킥을 하도 맞아 허벅지가 부어 경기가 끝난 뒤 한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이때 금이 간 코는 아직도 휘어 있다. ‘지금껏 뭐 하나에 몰입해 본 적이 없는데 또 끝나는구나….’ 무너진 자존심과 함께 열정도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방학 중에도 얄이는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체육관이 있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밖에 나가 1시간을 뛴다. 땀복이 몸에 끈끈하게 붙었을 때 체육관에 들어와 스트레칭을 하고 샌드백을 쳤다.

2014년 3월 2일 전국 신인왕전에서 얄이는 두 경기(73kg) 모두 상대를 KO시켰다. 5월 ‘제2회 서울시 오픈 무에타이 선수권 대회 72.5kg 1위’, 7월 ‘고양시장배 무에타이 선수권 대회 72.5kg 1위’, 11월 ‘제6회 고양시 연합회장배 생활체육 무에타이대회 72.5kg 1위’까지. 인생에서 1이라는 숫자를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파키스탄 출신인 얄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2013년 중학교를 중퇴했다. 아버지가 파키스탄 말로 지어 준 ‘친구’라는 뜻의 멋진 이름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국내 다문화학생 8만2536명(전체 학생의 1.35%) 중 부모가 파키스탄 출신인 경우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숫자 집계조차 따로 안 되니까. 하지만 “쟤네 아빠 외국인 노동자 ×× 아니야?”라고 욕할 때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얄이는 27일 난생처음 뛰는 챔피언전을 앞두고 또 체중 감량에 들어갔다. 준비 기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그 느낌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뜨거운 가슴팍 위로 느껴지는 차가운 금메달!

그는 매일 꿈꾼다. 줄줄 이름을 외우는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겨루는 자신을.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다문화 고교생#국가대표 김얄#무에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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