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 잃은 전우에 용기 주려… 의족 드러나는 반바지 즐겨입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7일 03시 00분


北지뢰도발로 두 다리 잃은 하재헌 중사, 국군수도병원서 멘토 역할

장애 병사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싶다는 하재헌 중사(왼쪽)가 유근영 국군수도병원장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유 원장은 “부상 병사들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군수도병원 제공
장애 병사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싶다는 하재헌 중사(왼쪽)가 유근영 국군수도병원장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유 원장은 “부상 병사들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군수도병원 제공
“팔다리를 잃은 동료들이 있는 곳은 무조건 찾아갑니다.”

1년여 전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고 국군수도병원에서 제2의 군 생활을 시작한 하재헌 중사(23)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하 중사는 지난달 19일부터 국군수도병원 원무과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그는 중환자실을 급히 찾았다. 두 다리에 의족을 한 그가 급하게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강 수색작업 중 떠내려 온 지뢰가 폭발하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잃은 장병 한 명이 병실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하 중사는 부상 장병을 만나 무심한 척 자신의 군복 바지를 걷어 올려 의족을 보여주며 “다 괜찮을 거다”라고 했다. 무뚝뚝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하 중사가 생면부지의 장병들을 찾은 건 이번만이 아니었다. 원무과 근무를 시작하고 약 한 달 동안 인근 부대에서 훈련 중 폭발상, 총상 등으로 팔다리를 잃고 치료 중인 병사들을 찾아다녔다. 처음 하 중사의 동료들은 활동하기 좋아하는 그가 병원에서 근무하기로 한 것을 의아해했다. 이에 대해 하 중사는 “19번 수술 끝에 살아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며 “몸 일부를 잃었을 때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 실의에 빠진 장병들을 위로할 수 있는 건 그들을 만나 내 얘기를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 중사는 당초 ‘전문 재활치료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내 접었다. 다친 장병들에게 100%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저 평범한 군인으로 남고 싶지 않았던 하 중사가 원무과 본연의 업무 외에 택한 것은 다친 장병들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나 역시 다리를 잃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보다는 다리를 잃은 6·25 참전 용사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큰 위로였다”고 말했다.

“중증 외상 장병들의 심리상담을 해주는 것이냐”고 묻자 하 중사는 “멘토 수준”이라면서 머쓱해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다친 장병들을 찾아다닐 것”이라는 그는 “그것이 내가 국군수도병원에 남은 이유”라고 강조했다. 하 중사는 병원에서 업무상 군복을 입을 일이 아니라면 의족을 훤히 드러내는 반바지를 즐겨 입는다. 이런 행동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하 중사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울컥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의족이 ‘나의 자랑’이다”라고 말했다.

혹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장애 군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는 하 중사는 “비록 몸이 조금 불편해졌지만 군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며 “장애가 생긴 군인들이 재활 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지뢰도발#하재헌 중사#국군수도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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