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 前 제일기획 부사장… 자신의 이름 딴 책방 열어
“직장인 기획-창의력 돕는 공간 조성”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한 건물의 4층에 올라서면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서재가 펼쳐진다. 큰 방(70m²)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10여 개 층의 높다란 서가엔 책이 빼곡하다. 서가 끝 목조 실내 계단을 올라가면 또 다른 서가가 있다. 높은 천장에는 오래된 샹들리에가 달렸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마룻바닥엔 안락한 소파와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다.
이곳은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55)이 이달 18일 문을 연 ‘최인아 책방’.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최초의 여성 상무, 최초의 여성 부사장 등 최초란 타이틀을 잇달아 거머쥔 그가 최근 ‘책방 마님’으로 변신했다.
독서량이 줄어드는 시대에 책방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돌연 사표를 내고 역사학을 공부했던 그는 일에 대한 갈증을 다시 느꼈다. 그러다 어느 조직의 부탁으로 지인들과 책읽기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늘 클라이언트(고객)를 염두에 두고 일했던 그에게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책읽기 프로젝트를 고객을 위해 벌일 게 아니라 차라리 우리가 하면 어떨까. 이젠 마음이 시키는 일, 가슴이 뛰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간 몰라서 못 하는 일보다 알면서 안 하는 일이 많지 않았던가….’
그는 ‘생각의 숲’을 모토로 책방을 꾸미기로 했다. 스스로도 29년간 광고 일을 하며 책에서 생각의 자양분을 얻었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등 명카피도 책에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한 덕분이다.
“‘광고쟁이’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어요. 광고쟁이라고 하면 톡톡 튀는 끼나 순발력을 떠올리지만 생각을 묵혀 본질을 꿰뚫는 힘이 더 중요하거든요. 아는 것이 힘이던 시대에서 생각이 힘인 시대가 됐어요. 창의력, 기획력, 문제해결력 등으로 통칭되는 생각하는 힘을 책방을 통해 북돋고 싶었죠.”
최 씨는 광고계 문화계 인사들에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봄 직한 주제를 주고 그에 걸맞은 책을 추천받았다.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고민할 때’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책’ 등이다. 지인 150여 명은 두툼한 추천서를 기꺼이 건넸다. 최 씨는 이를 바탕으로 책을 구비했고 책마다 추천인과 추천 이유를 손글씨로 정리해 끼워 넣었다. 나름대로 책을 분류·추천하는 북 큐레이션인 셈이다.
“생각은 다양성에서 시작되잖아요. 모든 극장이 대작을 걸 필요가 없는 것처럼 모든 책방이 베스트셀러를 팔 필요는 없죠. 꾸준히 읽히는 책이나 좋은 책인데도 잊혀진 책을 책방에서 발견하게 해서 다양한 생각을 만나게 하고 싶어요.”
그의 책방은 오피스빌딩이 빽빽한 동네에서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체험하는 곳으로 통한다. 그는 앞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강의, 소규모 북클럽 등을 통해 책방을 다양한 생각을 접하는 플랫폼으로 만들 생각이다. “속도의 시대에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싶을 때, 마음이 흔들릴 때 들러주세요. 언제든 책방을 지키는 책방 마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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