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획전 개최 김지연 예술감독
‘굳은살 박인 손’ 사진전 열고, 상인들 캐리커처로 트리 만들기도
한글날 맞아 세계문자심포지아 유치
‘종로 토박이’ 김지연 예술감독은 낙원상가 상인들의 행복을 꿈꾸고 있다. 그는 “상인이 행복해지면 낙원상가의 기운이 좋아지고 소비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악기상가 4층 벽에서는 여러 모양의 양손을 찍은 흑백사진들을 볼 수 있다. 모두 기타나 색소폰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굳은살이 박인 손들이다. 사진의 제목은 ‘고수의 도구’. 이 상가에서 일하는 상인들이 고수(高手)이고 그들의 손이 도구라는 뜻이다.
이 사진전을 기획한 사람은 김지연 예술감독(43). 김 감독은 낙원상가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상가 내외부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 기획을 도맡고 있다. 아트센터와 갤러리 등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던 김 감독이 낙원상가를 ‘캔버스’로 삼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경남 합천군 해인사와 경남 창원시 등에서 예술전을 기획했던 김 감독은 자신이 나고 자란 종로구에서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산속 사찰과 지방에서 전시회를 진행해 왔는데 장소에 대한 거리감이 커서 내가 생각한 전시와 장소가 딱 달라붙는 느낌이 덜하더라고요. 종로 토박이인 내게 익숙한 공간에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는 어릴 때 모교인 덕성여중을 오가며 봤던 낙원상가를 떠올렸다. 1969년 만들어진 낙원상가는 300여 개의 악기 상가와 149채의 아파트가 뒤섞인, 당시로선 최고급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그런 기억을 더듬으며 김 감독은 지난해 5월 무작정 ‘동경의 장소’였던 낙원상가를 찾았다. “여기서 예술가들과 전시를 해보고 싶습니다.” 다짜고짜 낙원상가 경비원에게 말을 건넸다. 경비원은 상가 상인회의 총무를 소개해줬고 김 감독은 전시 취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전시 허락을 받아냈다.
지난해엔 상가 상인들의 꿈을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건물에서 하루 종일 일하다 보니 하늘을 볼 기회가 없다는 상인을 위해 하늘 영상을 찍어 상가 곳곳에 설치했다. 웃을 일이 없다는 상인을 위해 그들의 웃는 모습을 캐리커처로 그려 만든 영수증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낙원상가에서 길게는 40년 넘게 일한 상인들이라면 내공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이들의 잠재된 기운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상인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시작해야겠다 싶었죠.”
올해엔 한글날을 맞아 세계문자심포지아를 유치했다. 5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예술가와 학자가 손을 잡고 문자의 경직된 이미지를 벗어던지겠다는 의도를 품고 있다. 문자를 단순한 글자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악기, 악보, 몸짓으로도 표현해 소통 영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낙원’을 점자로 번역해 이를 스피커로 표현하고 180cm 높이의 낱말 조각 작품을 설치했다. ‘고수의 도구’ 사진전도 이 행사의 일환이다. 내년엔 ‘소리’를 키워드로 하는 사운드페스티벌을 낙원상가에서 열 계획이다.
“예술이 지향하는 건 굉장히 소박해요. 제가 기획한 전시물들이 상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즐겁고 부드럽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상인의 표정이 밝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이 공간도 살아날 거예요. 상인 한 명 한 명이 가진 매력을 되살리는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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