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강남구 자생한방병원에서 만난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이사장은 “의사는 몸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회공헌 활동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 과정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받아 오던 월급도 올해부터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2013년 617억 원의 개인 자산을 출연해 공익의료재단을 만들었던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 이사장(64)이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털어놓았다. 재단이 지급하던 신 이사장 월급은 사회공헌 기금으로 그대로 보태지고 있다.
1990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한의원을 개업해 26년 만에 국내 최대 규모의 한방병원으로 키워낸 그는 사회공헌 분야에서도 ‘큰손’으로 불린다. 전 세계를 돌며 소아암 환자 치료비 모금 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의 청년 대표에겐 수천만 원의 후원금을 지원했다. 시민들이 종이로 하트를 접어 페이스북에서 인증하면 개당 1000원의 척추질환 환자 치료비를 재단이 대신 내줬다. 손연재, 추신수, 최경주 등 스포츠 스타들은 큰 대회를 앞두고 자생한방병원의 의료 지원을 받았다.
그의 사회공헌 활동은 농민, 청소년, 장애인, 대학생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물량 공세처럼 쏟아지는 게 특징이다. 직원들끼리 돌려 보기 위해 연간 사회공헌 활동을 정리한 ‘사회공헌백서’의 분량만 120쪽에 이른다.
신 이사장이 꾸준히 기부·후원을 해 온 배경엔 부친인 고 신광열 씨의 영향이 크다. 북한 출신인 그의 부친은 6·25전쟁 때 충남 당진으로 피란을 온 의사였다.
“여섯 살 때 마을의 한 아주머니가 먹고살기 힘드니 양잿물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요. 마을 주민들이 ‘사람 죽는다’고 소리쳐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그 집에 갔죠.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는 호스를 잘라 아주머니 입에 꽂고 간이 위세척을 하는데 아버지가 제게 ‘아주머니 배가 볼록해지면 토하도록 누르라’고 시키셨죠. 다행히 아주머니가 기적처럼 살아났는데 그때부터 한의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는 한의원을 연 뒤 짬짬이 시골 노인을 위한 의료봉사를 다녔다. 어릴 때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시골 곳곳을 누볐던 기억이 남아서다. 그 사이 병원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에게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가 몰려 역삼동 일대 모텔 방이 동났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큰돈을 번 그는 2013년 공익의료재단을 설립해 체계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모아둔 사재 617억 원과 병원 자산 등을 합한 653억 원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법인카드를 모두 버리고 병원 수익은 사회공헌 활동에 재투자하거나 저소득층 무상 진료, 척추관절 연구 등에 쓰도록 했다. 올해부터는 그의 월급도 공헌활동을 위해 쓰이고 있다.
“평생 번 돈을 모두 내놓는 건데 다행히 자녀들이 제 뜻을 지지해 줬어요.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언젠가는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이야기했었거든요. 재산을 내놓고 나니 골프, 술, 모임을 끊게 되더라고요. 예전엔 하루 저녁 모임이 기본적으로 3곳이 있었고 거의 제가 돈을 냈었죠.”
그는 “앞으로 몸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고칠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정신적으로 지치고 좌절해 있는 이들을 보듬어주는 게 의사의 또 다른 역할이라는 것이다.
“병원 이름인 자생(自生)은 사람이 가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살려준다는 의미입니다. 사회공헌 활동도 결국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심의(心醫)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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