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진출 韓여성 최고위직… “당선인이 내 이름보고 콕 찍어”
10년 생활 접고 귀국하려다 중책 맡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당선인의 인수팀장을 맡게 된 강경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사무차장보가 유엔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한국인’으로 불릴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 유엔 제공
“처음엔 모르는 전화번호여서 받지 않았어요. 계속 울려 받았더니 유엔 사무총장 당선인이더군요. ‘인수팀장을 맡아 달라’고 하기에 ‘왜 나냐’고 물었죠. (인수팀장) 후보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본 순간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대요.”
‘유엔 최고위직 한국 여성’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아온 강경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61)는 13일(현지 시간) 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당선인 인수팀장을 제안받았던 순간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서 일할 때 구테흐스 당선인은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여서 몇 차례 대화를 나눈 것이 개인적 인연의 전부”라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유엔 안팎에선 그의 발탁에 대해 “포르투갈 총리 출신인 구테흐스 당선인이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선보인 첫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핵심 측근이자 아시아 여성인 그를 선택함으로써 “원활한 업무 인수인계뿐 아니라 양성평등이나 다양성 존중 같은 유엔의 중요 가치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유엔 소식통들은 전했다.
강 차장보는 “2006년엔 외교부 국제기구국장(당시 국제기구정책관)으로 반 총장의 당선에 미력이나마 기여했고 10년 만에 새 총장도 도울 수 있게 돼 큰 영광”이라며 “반 총장께서도 ‘정말 잘된 일’이라며 많이 축하하고 격려해주셨다”고 했다.
그는 이달 10년 동안의 유엔 생활을 정리하고 내년 봄부터 모교인 연세대에서 강의할 계획이었다. 그는 “한국에 있는 남편과 세 아이(2녀 1남)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는데 당분간 뉴욕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 시어머니가 아쉬워하신다”고 했다.
강 차장보가 유엔에서 승승장구하는 데는 탁월한 영어 실력이 큰 몫을 했다. 그는 역대 국회의장들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다. 초등학교 때 KBS 아나운서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3년 정도 생활하고 귀국한 덕에 학창시절 내내 ‘영어 잘하는 학생’으로 불렸다. 그는 “2004년 여성지위위원회 위원장으로 회의를 진행했는데 당시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나를 눈여겨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학강사 시절 영문법을 가르친 경험이 있어 영어가 모국어인 유엔 직원이 써온 보고서에서 문법을 바로잡아 주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아시아 여성인 그를 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싹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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