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역사 다시 쓰면 결국 우리 자신 다치게 할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일 03시 00분


안데르센문학상 수상식서 밝혀… 日아베정권-극우세력 겨냥 해석

 “모든 사회나 국가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 그림자, 부(負)의 부분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인내심 있게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7)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안데르센문학상을 받으며 역사수정주의와 배외주의(排外主義·외국의 문화와 사상을 배척하는 것)를 경계하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날 안데르센의 탄생지인 오덴세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그림자의 의미’라는 제목의 영어 연설을 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날 연설에서 그림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하다가 결국은 자신의 주인을 살해한다는 내용인 안데르센의 작품 ‘그림자’를 인용해 “우리는 때로 그림자로부터 눈을 돌리려고 하고 무리하게 이를 없애려 한다”고 말했다. 또 “밝고 빛나는 부분이 있으면 이와 균형을 맞추는 어두운 면이 있다. 가끔은 자신의 어두운 면과 맞서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그림자는 언젠가 더 강대한 존재가 돼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림자에 직면해야 하는 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다”라며 “아무리 담을 높게 쌓아도, 아무리 엄격하게 외부인을 배제해도, 유리한 쪽으로 역사를 다시 쓰더라도 결국은 우리 자신을 다치게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무라카미는 ‘그림자’와 ‘담’이 무엇을 뜻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민자 배척 문제 등 세계정세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과거사를 왜곡하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역사수정주의 움직임과 혐한 시위를 일삼는 일본 내 극우세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놨다.

 안데르센문학상은 2007년에 만들어졌으며 ‘해리포터 시리즈’로 알려진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 ‘악마의 시’를 쓴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 등이 이 상을 수상했다. 무라카미는 이번 수상으로 상금 50만 크로네(약 8500만 원)와 미운 오리 새끼 동상을 받았다.

 무라카미는 지난해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상대국의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더라도 ‘그만큼 사죄했으니 이제 됐다’고 (상대국이) 말할 때까지 사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사죄에 인색한 일본 정부를 비판한 바 있다. 2009년 이스라엘 최고 문학상인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에서는 “만일 높고 단단한 벽과 그에 부딪치는 달걀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언제나 달걀의 편에 설 것”이라며 이스라엘을 비판했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무라카미 하루키#안데르센문학상#하루키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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