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직전까지도 별을 몇 개 받을지 알려주지 않더군요. 마지막에 저 혼자 남아 있기에 ‘혹시 잘못 초대된 건가’ 생각했습니다.”
7일 열린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 2017’ 발표 행사에서 신라호텔서울의 한식당 ‘라연’은 마지막에 이름이 나왔다.
8일 오전 만난 김성일 라연 책임주방장(53)은 “오늘 아침에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꿈처럼 느껴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번 평가에서 별(스타) 셋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라연에 걸려오는 예약 문의전화는 평소의 15배로 폭증했다.
라연은 신라호텔서울이 기존 한식당 ‘서라벌’ 문을 닫은 지 8년 만인 2013년 8월 오픈했다. 한식당은 국내 특급호텔들이 흔히 ‘수지맞지 않는 장사’로 꼽는다. ‘집밥’을 최고로 꼽는 한국인 정서상 전통 한식을 비싼 호텔에서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 책임주방장은 “라연을 열 때도 새로운 퓨전 한식을 할지, 전통 한식을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며 “그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라연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주셨다”고 말했다.
“이번에 함께 별 셋을 받은 ‘가온’도 전통 한식을 추구하죠. 이번 선정이 이런 전통 한식의 맛을 인정해준 것 같아 뿌듯합니다.”
그는 라연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통’과 ‘정통’으로 설명했다. 전통은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처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음식을 한다는 의미다. 정통은 그런 전통을 양식이나 퓨전 요리기법을 되도록 가미하지 않고 바르게 이용한다는 뜻이다.
전통 한식을 추구하는 만큼 라연에서는 국내산 재료만 사용한다. 이를 위해 식자재를 전담하는 ‘명품 제철·제산지 TF(태스크포스)팀’이 매해 국내 100여 곳의 특산지를 돌아다니며 기후와 작황을 고려해 식자재를 조달한다. 수박 하나를 고르더라도 그 시기 가장 맛이 좋은 곳에서 가져오기 위해 매달 산지가 달라지는 식이다.
이 때문에 라연의 메뉴 역시 계절에 따라 바뀌는 편이다. “한국은 사계절이 있으니 계절의 변화가 메뉴 개발에 가장 큰 영감이 됩니다. 요리는 바뀌지만, 전통 한식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코스 그 자체가 라연의 대표 메뉴라고 할 수 있죠.”
라연에서는 매주 한두 차례 주방 스태프들이 돌아가며 새로운 메뉴를 구상해 발표한다. 김 책임주방장은 “주방 식구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시간이지만 압박감, 긴장감이 있어야 그걸 이겨내면서 발전을 한다”며 “수석과 막내의 실력 차가 거의 없는 주방이 가장 훌륭한 주방”이라고 강조했다.
긴장감과 압박감은 늦은 나이인 26세에 요리를 시작한 김 책임주방장이 평생 짊어져 온 것이기도 하다. “원래는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호주로 이민을 가려고 조리사 자격증을 따며 요리를 시작했다. 그러다 집안 사정으로 한국에 머무르게 되면서 1988년 호텔신라에 입사해 28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우연히 시작해 평생 요리를 해 왔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곁눈질을 한 적이 없다. 늘 늦은 나이에 시작했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 왔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이제 또 다른 과제가 놓여 있다. 받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미쉐린 스타를 내년에도 그대로 유지할지 여부다. 답은 의외로 담백했다. “‘맛’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임감을 갖고 더 노력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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