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대동법처럼… 공론의 장 열고 소통해야 現시국 해법 나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5일 03시 00분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펴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

노동부 차관을 지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는 “역사를 잘 살펴보면 지금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노동부 차관을 지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는 “역사를 잘 살펴보면 지금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법과 제도가 올곧게 서지 못하면 정치판이 사심과 불공정으로 물들게 되죠. 국가의 붕괴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지난달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를 펴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63·전 노동부 차관)가 쏟아낸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 조선시대 실패한 제도를 오늘날에 비추어 봐도 별다른 시대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두루뭉술한 제도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약해진 조선의 상황은 지금 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며 말을 꺼냈다.

 정 교수는 노동경제학을 전공하고 30년 동안 노동부 주요 보직을 거쳐 노동부 차관을 지냈다. 그는 저서에서 조선시대 정치와 관료들의 행태가 당시 백성들의 의욕을 꺾었고 그로 인해 조선의 ‘국가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의 궁금증은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은 한중일 3국 중 왜 유독 한국은 국력이 다른 두 나라보다 약했는가에서 출발했다. 관직에 오래 근무한 경력을 살려 조선과 성리학의 원조인 중국의 국가제도를 면밀히 분석하다 ‘디테일’의 차이가 작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냈다. “조선시대 법과 제도를 분석해 보면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었다”며 “백성들이 납득할 만한 균형 있는 국가 운영이 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조세제도인 공물제만 봐도 국가에서는 어떤 물품을 납품하라고 군·현 단위로 배정만 했습니다. 군수나 현감이 누구에게 어떤 물건을 내라고 하든 상관 안 했죠. 그러다 보니 양반은 납세 의무에서 쏙 빠지고 신분이 낮은 백성들만 무거운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제도가 명확히 정비되지 않은 이유는 조선이 중국에서 도입한 성리학이 본토와 다르게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정 교수는 분석했다. 도덕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던 조선 성리학자들이 법과 규정을 치밀하게 정비하는 것을 ‘성리학에 반하는 조치’라며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면서 적지 않은 관료들은 허술한 제도 아래에서 자신의 의무를 피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관료들 사이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법망 사이로 쏙쏙 빠져나가는 권력형 비리, ‘흙수저’로 표현되는 사실상의 계급 등 조선시대 문제는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해법을 찾았을까. 정 교수는 “우선 공론의 장에 모든 것을 열어놓고 소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100년에 걸쳐 완성된 조세제도인 대동법의 제정 과정을 보면 놀랍습니다. 왕부터 지방 향촌까지 조세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폭넓게 묻고 토론했습니다. 세금과 국가 재정담당자가 아니라도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었고, 그 시대에 17만 명분의 여론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정 교수는 “이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통한 뒤 최고 권력층에도 성역(聖域)이 존재하지 않는 공평하고 강력한 법과 규정이 적용될 때 혼란스러운 질서가 다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치인과 관료의 책임을 강조했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결국 정치인과 관료들이기에 이들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책을 쓰면서 절감했습니다. 그들이 딴생각을 하는 순간 국가 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정병석#흙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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