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뿐 아니라 중국어, 베트남어, 일본어 등 8개 언어로 제작되는 진기록을 세운 한국 영화가 있다. 2014년 개봉해 865만 관객을 끈 심은경 나문희 주연의 ‘수상한 그녀’다.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이던 욕쟁이 칠순 할머니(나문희)가 갑자기 20대 젊은 여성(심은경)으로 변하면서 벌어지는 사연을 다룬,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영화다.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 이 작품을 한중일 버전으로 만든 영화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나의 스토리가 세 나라에서 함께 사랑받은 비결과 이를 통해 본 3국 문화의 공통성과 다양성을 논의하는 ‘유쾌한 한중일 무비 토크’ 행사를 위해서였다.
이 무비 토크는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과 일본국제교류센터가 공동 주최했고, 동아일보가 후원했다. 특히 한중일 문화 교류를 위해 힘써 오다 4월 작고한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생전에 추진하던 행사였다.
3국 감독들은 이젠 ‘원 소스 멀티 테리토리(지역)’ 시대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중국판 ‘수상한 그녀’인 ‘20세여 다시 한번’을 만든 레스티 천 감독은 “영화 촬영 전, 자막도 없는 한국판을 봤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감동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 역시 한국판을 보고 어머니에게 아주 오랜만에 안부전화를 했다”며 “감독과 배우, 배경이 다르게 제작됐지만 3국이 공유한 보편적 정서 덕분에 관객에게 전해진 감동은 같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세여 다시 한번’은 지난해 1월 중국 전역 5500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돼 1200만 관객을 모았다. 매출이 657억 원으로 역대 한중 합작 영화 중 1위다.
원작을 만든 황동혁 감독 역시 “어려서부터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살다 보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손자와 할머니의 관계에 대해 느낀 점이 많았다”라며 “전체적인 틀은 3국이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많이 수정됐는데, 영화 속 3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도 흥미로웠다”라고 했다.
3국에서 개봉한 ‘수상한 그녀’는 영화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현지화 전략’에 맞춰 세부적으로 수정됐다. 중국판에선 산아제한 정책 탓에 할머니의 손자들이 남매 대신 ‘쌍둥이’로 설정됐고, 올 4월 상영된 일본 판에선 여성 관객이 많은 일본 영화시장 등을 감안해 어머니와 아들, 며느리라는 한국적 설정 대신 어머니와 딸로 바꿨다.
일본의 미즈타 노부오 감독은 “‘수상한 그녀’가 여러 국가에서 어필한 것은 탄탄한 스토리 덕분”이라며 “줄기가 튼튼하니 가지도 잘 뻗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인공인 할머니 이야기가 와 닿는 것도 한국과 일본 모두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공통점에서 비롯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수상한 그녀’는 다음 주엔 태국, 내년 상반기엔 인도네시아에서도 개봉한다.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의 양허우란 사무총장은 “한중일의 대중문화 교류는 각국 국민의 문화 예술 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정치, 경제가 대신할 수 없는 동아시아의 상호 이해를 높인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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