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맑은 이들의 목소리가 간절하지 않을까요. 화가인 제가 세상과 산중 수녀원을 잇는 다리가 되겠다고 나선 이유입니다.”
전국적으로 10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집회에 참가한 19일. 사방이 어스름해져 점점이 켜든 촛불이 밝게 물결치는 서울 광화문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일민미술관 옥상에서 만난 김호석 화백(59)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성철 스님의 진영(眞影)과 다비식 모습을 그린 것을 계기로 여러 스님을 화폭에 담은 수묵화가다.
김 화백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자리 잡은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장요세파 수녀(58)가 오랫동안 써온 시들을 모아 지난달 시집을 펴내는 작업을 함께했다. 이 수녀원은 종신서원(終身誓願)을 하고 들어가면 원칙적으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봉쇄 수녀원’이다.
그런 장 수녀와 김 화백을 이어준 것은 그림 한 장이었다. 32년 전 수도원에 들어간 이래 쉼 없이 시를 써온 장 수녀가 수녀원 소식지에 실을 자신의 시에 김 화백의 그림을 써도 괜찮겠느냐고 연락한 것이다. 김 화백은 “조용히 기도하고 수도하는 이들이 버티고 있기에 세상이 흔들려도 바로잡을 힘도 생긴다는 믿음이 있어 흔쾌히 승낙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출간된 시집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일어서며’에서 ‘평화와 칼’이라는 시 가운데 ‘칼/나를 찔러/그대를 살리는 칼’이라는 구절에 대해 김 화백은 “희생하는 마음으로 수도하는 모습이 비장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고 평했다.
김 화백은 3일 수녀원을 찾았다. 그와 장 수녀가 얼굴을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봉쇄 수녀원은 방문객이 넘을 수 없는 선이 엄격하지만 이날만은 이례적으로 문을 열어 김 화백을 특별한 강연자로 맞이했다.
김 화백은 수년 전 몽골 평원을 찾아가 오랫동안 머물며 그렸던 그림들을 거푸 큰 화면 위에 펼쳐 놓았다. 무서운 속도로 평원을 달리는 말과 그 위에 올라탄 당당한 표정의 몽골인들. 스무 명가량의 수녀들은 먼 나라 풍경을 보느라 다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삶과 죽음이 편안하게 교차하는 그림 중에는 짐승이 죽은 자리에서만 유독 파랗게 돋아나는 새로운 풀을 그린 것도 있었다.
어지러운 바깥소식을 모르지 않아서일까. 이 그림을 놓고 한 수녀는 “썩어가는 것이 있어도 그 밑에는 맑은 물이 흐를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라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