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인천상륙 성공 이끈 ‘X-RAY작전’ 주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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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수 前 해군참모총장

 6·25전쟁의 판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의 토대가 된 적 정보 수집 작전(일명 X-RAY작전)의 주역인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예비역 중장·사진)이 23일 오후 5시 42분경 별세했다. 향년 88세.

 함 전 총장은 고령에도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했지만 지난주 산책 중 낙상사고를 당한 뒤 입원했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함 전 총장은 1946년 1월 해군사관학교(당시 해군병학교) 1기로 입교해 다음 해 1월 소위로 임관했다.

 6·25전쟁 당시 소령이던 함 전 총장은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적 병력 규모 등의 정보를 수집하라는 임무를 받고 ‘X-RAY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17명 규모의 첩보 특공대를 조직한 그는 첩보부대장직을 맡아 인천에 잠입해 한 달간 정보를 수집했다. 올여름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X-RAY작전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함 전 총장은 영화 주인공인 배우 이정재 씨가 연기한 해군 장학수 대위 역의 실제 모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6·25전쟁 이전인 1949년 8월 해군 정보감(소령)으로 근무할 당시 북한군이 한국군 함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장 전용보트를 납치하는 도발을 일으키자 같은 달 17일 한국군 최초의 대북 응징 보복 작전인 ‘몽금포작전’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우리 군은 함정 6척, 특공대 20명을 동원해 북한 몽금포항을 공격해 북한 경비정 4척을 격침하고 1척을 나포하는 한편 북한군 12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해군참모총장 재임(1964년 9월∼1966년 9월) 시에는 해군 최초로 해군 수송부대를 베트남전에 파병했다. 당시 데이비드 맥도널드 미 해군참모총장과 협상해 해안 감시용 레이더와 고속상륙함 2척을 도입해 해군력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해군의 수장이었지만 그는 임기를 마칠 때까지 셋방살이를 할 정도로 청렴한 삶을 살았다.

 함 전 총장은 해군이 2008년 건군 60주년을 맞아 군인정신의 표상으로 선정한 명장 18명에 포함됐다. 정부는 그의 공을 기려 금성을지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금성충무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서훈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정애 씨, 아들 영태 씨(중앙대 교수), 딸 영주 임주 승희 씨, 사위 김영순(세이코 사장) 박광빈(변호사) 조형래 씨(베네통 사장)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 장례는 엄현성 해군참모총장이 주관하는 해군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26일 오전 7시 엄수된다. 안장식은 같은 날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다. 02-3410-6920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함명수#해군참모총장#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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