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희은 “소름 끼친 무대, 노래 빚 좀 갚은듯”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8일 03시 00분


26일 촛불집회 무대 선 가수 양희은

26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래하는 가수 양희은. 그는 “굉장히 떨렸는데 함께 불러 주시니 좋았다. 언제든 이런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고 했다. KOPA사진공동취재단
26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래하는 가수 양희은. 그는 “굉장히 떨렸는데 함께 불러 주시니 좋았다. 언제든 이런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고 했다. KOPA사진공동취재단
 “소름이 끼치고 굉장히 떨리는 무대였지요. 제가 진 ‘노래 빚’을 이제야 좀 갚는 것 같습니다.”

 26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 무대에서 ‘상록수’ ‘행복의 나라로’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 양희은(64). 27일 전화로 만난 그는 150만 개의 촛불 앞에 선 감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70, 80년대에는 오히려 집회에서 노래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대학생 때 집회 현장에 노래하러 가면 교수님들이 ‘네가 왜 여기 있느냐!’고 호통치며 막아서서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였죠. 1987년 6월항쟁 때는 결혼과 신혼여행이 겹쳐 참여하지 못했고요.”

 이번 무대 뒤 인터넷에서는 새삼스럽게 양희은과 박근혜 대통령의 공통점이 화제가 되고 있다. 두 사람은 1952년생 동갑내기로 서강대 사학과(양희은)와 전자공학과(박 대통령)를 다녔고, 군인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날 부른 노래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박정희 정권 때 금지곡이었다.

 양희은은 인터뷰 중 여러 차례 마음에 있는 노래 빚을 언급했다. “어떤 면에선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죠. 사람들이 (노래의) 불씨를 계속 되살려 주고, 되살려 주고 했으니까. 늘 되돌려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노래 빚을 잔뜩 지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걸 갚아야 눈을 감고 떠날 수 있죠.”

 그의 노래가 집회에서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지만 정작 그가 집회 무대에 선 것은 드물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처음 집회 무대에 올랐고, 8년이 흐른 뒤 다시 여기 왔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26일 집회 참가자들 다수는 그의 출연을 예상치 못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낭랑한 목소리, ‘상록수’의 첫 소절은 담담하되 선언적이었다.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광화문광장에 내리던 첫눈처럼 들이닥친 노래. 하지만 그 순간 양희은의 호흡은 가빴고 컨디션은 온전하지 않았다.

 “그날 낮 대구에서 행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시내에서 촛불집회와 ‘박사모’의 대치로 교통대란이 일어났죠. 하릴없이 도보와 지하철로 동대구역에 닿아 오후 4시 51분 열차를 타고 부랴부랴 서울로 왔어요.”

 서울역에서 다시 지하철로 이동해 경복궁역 출구부터 인파를 헤치고 경보로 광화문 무대 뒤에 닿으니 공연 4분 전이었다. “딱 물 한 모금 마시고 호흡도 정리하지 못한 채 무대에 섰네요.”

 선곡 배경을 물으니 물음으로 받아친다. “그럼 ‘하얀 목련’을 하겠어요, ‘한계령’을 하겠어요? 이 시점에 사람들이 원하는 게 ‘상록수’ ‘아침이슬’ 아니겠어요.”

 그는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에 대해서는 “다들 왜 살겠느냐. ‘행복하자/아프지 말고’ 하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가사처럼, 그런 거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박근혜 퇴진’의 구호 속에 이 노래들을 토해낸 소회는 남다를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듣는 분들, 받아들이는 분들 마음이 있을 테니 내가 말을 보태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시국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그런데요. 저도 어쨌든 노래로 광장에 있었으니까, 그만하면 노래로 (제 맘이) 얘기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양희은#상록수#촛불집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