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분노로 몰아넣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묻자 게오르크 켈 전 유엔글로벌콤팩트 사무총장(62)은 ‘기회’를 얘기했다. 29일 열린 ‘2016 소셜 임팩트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켈 전 총장은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오랫동안 부패해온 국정 관리체계를 완전히 ‘리셋’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라고 강조했다.
기업윤리 전문가인 켈 전 총장이 2000년 설립한 유엔글로벌콤팩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구하는 유엔 산하기관이다. 세계 160개국 800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유엔글로벌콤팩트를 15년간 이끌어온 켈 전 총장은 퇴임한 뒤 ‘아라베스크 파트너스’의 부대표로 재임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 가치와 연결짓게 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10년 전부터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켈 전 총장은 26일 열린 5차 촛불 집회에도 참가했다. 2시간가량 행진에 동참했다는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건강한 민주주의를 보여줬다”며 “자랑스러워할 만한 모습”이라고 극찬했다. 국민의 분노가 국가정책과 자본을 좌지우지한 비선(秘線)을 향한 것에 대해 “이번 계기로 한국 사회는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절실하게 배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명성은 켈 전 총장이 약 1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반복한 단어였다. 그는 투명성이 “부패를 막는 최고의 보험이자 위험을 막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라고 표현했다. 이번에 대기업의 총수들이 부패 범죄에 연루돼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것 역시 불투명한 거버넌스(지배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세계가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100%의 투명성’의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기업과 정부는 아직도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공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부패와 스캔들이란 ‘바보 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명성을 위해 켈 전 총장이 제안한 것은 일종의 ‘방화벽’이었다. ‘빅 머니(기업)’와 ‘빅 파워(정부)’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반드시 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기에 둘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미국 국민의 절반가량이 ‘기업과 정부가 지나치게 가까워 법제도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는 설문조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의 재단출자 한도가 없거나, 정부가 기업들의 참여를 당연시하는 등 공공과 민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늘 부패의 위험이 생긴다”며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어느 정도 고립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대기업의 자본이 사실상 ‘일심동체’로 움직여 한국 사회를 어지럽혔던 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켈 전 총장은 “급격한 투명성의 진화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기업이 모든 재정과 의사결정구조를 완벽하게 공개할 수 있어야 지속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라베스크 파트너스가 영국 옥스퍼드대와 공동으로 진행한 최근 연구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에서 공적 책임을 훌륭하게 해내는 기업일수록 성과도 좋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어떤 일도 어둠 속에서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완벽하게 공적인 빛(light)에 드러나야 합니다. 한국은 이번에 어둠을 밝히기 위해 ‘촛불 집회’로 보여준 성숙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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