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스물두 살 청년인 이재천 씨는 한 달여 전 GS25 연수골드점(인천 연수구 함박로)의 경영주가 됐다. 친구들은 아직 학생이거나 아르바이트생이 대부분인 나이. 친구들은 그를 두고 “벌써 사장이 됐다”며 부러워하고 있다. 이 씨 역시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 알바생’이었다. 몇 개월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인천의 한 GS25 편의점에서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일하는 고된 생활을 이어가던 5월. 이른 새벽 편의점 앞 승용차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본 이 씨는 앞뒤 재지 않고 곧바로 달려 나갔다. 승용차 안에는 40대 남성 운전자가 쓰러져 있었다. 폭발음과 함께 운전대 앞까지 불이 옮겨붙는 아찔한 상황 속에서 이 씨는 조수석 창문을 깨고 운전자를 구출했다.
당시 모습을 담은 영상이 한 방송사 뉴스에 보도됐다. 이 씨는 인천시 등 곳곳에서 표창을 받았다. 이 소식이 GS25 본사에 전해졌다. GS25는 이 씨에게 포상금 100만 원을 지급한 뒤 편의점을 경영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고는 그가 가맹비와 보증금 없이 편의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가 운전석에 쓰러진 남자를 본 순간 떠올린 것은 그가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
“저 남자가 죽으면 남겨진 가족들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죠.”
그의 아버지는 급성백혈병으로 숨졌다. 발병 후 숨을 거두기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와 어머니 김현숙 씨(49)의 삶은 크게 흔들렸다. 어머니는 아들의 고교 시절 내내 거의 매일 술로 슬픔을 달랬다. 피눈물을 토해냈고 웃음은 잃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이 씨가 느낀 감정은 놀랍게도 ‘미안함’이다.
“엄마를 원망한 적 없어요. 오히려 나 때문에 더 힘들 것 같아 미안했어요.”
그때부터 그의 목표는 “엄마를 웃게 하는 것”이 됐다. 전단 돌리기, 식당 서빙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회를 샀다. 그가 회를 사올 때면 어머니는 술을 먹지 않고 회만 먹었다. 그게 좋았다.
이 씨는 해양과학고에 진학한 후 항해사를 꿈꿨지만 엄마를 두고 집을 비울 수 없단 생각에 포기했다. 그리고 고교 때처럼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엄마를 지켰다. 그러던 중 기회가 행운처럼 찾아왔다.
주위에서는 효심이 지극해 복 받은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는 손사래를 친다. 그가 겪은 불행이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듯 그에게 온 행운도 그가 잘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도움 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요즘 참 웃기 힘든 시절이지만 그래도 다들 웃었으면 좋겠어요. 불행하다 생각하면 더 불행해지니까요. 저희 엄마도 요즘 다시 웃어요. 그게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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