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테러범 쫓고… 내전 소녀들 품고… 세계의 義人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英가디언 ‘이름없는 영웅 8인’ 선정
팔-다리 잃은 주민들 의수-의족 제작… 노숙인에게 매주 무료급식 제공

2013년부터 이탈리아 로마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해온 메리 스튜어트밀러 씨(왼쪽)가 동료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 가디언
2013년부터 이탈리아 로마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해온 메리 스튜어트밀러 씨(왼쪽)가 동료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 가디언
 프랑스 혁명기념일인 7월 14일 밤 불꽃축제를 보고 집으로 향하던 청년 알렉상드르 미그 씨는 관광 인파를 볼링 핀처럼 쓸어버리는 트럭 테러범을 발견했다. 타고 가던 자전거를 버리고 뛰기 시작한 그는 트럭의 속도가 떨어진 틈을 노려 조수석 쪽 문으로 올라타 테러범에게 접근한 뒤 경찰이 도착하기 바로 전까지 테러범의 운전을 방해했다.

 더 큰 피해를 막은 용기 있는 행동으로 미그 씨는 영국 일간 가디언이 선정해 26일(현지 시간) 발표한 ‘2016년을 빛낸 이름 없는 영웅 8인’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충격으로 지금껏 불면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미그 씨는 “내가 영웅 대우를 받는 것은 원치 않는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길 바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유럽 파시즘의 부활, 시리아 알레포 민간인 학살, 극우 정치인의 승리…. 2016년 세계를 휩쓴 우울한 사건 속에 이름도 빛도 없이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은 미그 씨뿐이 아니었다. 가디언은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이 올 한 해 우리 사회의 소수자, 노숙인, 버림받은 자들을 돌봤다”며 사연을 전했다.

 시리아 내전 중 팔과 다리를 잃은 주민들에게 의수 의족을 만들어 주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아셈 하스나 씨. 2013년 시리아 정부군 위생병으로 일하던 중 폭격을 맞고 왼쪽 다리를 잃었다. 삶이 멈춰버린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나는 새로운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기 위해 다리를 수업료로 지불한 것일 뿐’이라고 되뇌며 역경을 극복했다. 이후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배워 자신과 같은 전쟁 피해자 돕기에 나섰다.

 여성운동가 빈타(가명) 씨는 카메룬 북부 무장세력인 보코하람에 납치됐던 소녀들을 수양딸로 맞아 함께 살며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10대 초반인 피랍 여성들은 나이가 많은 납치범들과 강제 결혼해 임신과 유산을 반복한다. 극적으로 탈출해도 고향에서도 버림받기 마련이다. 빈타 씨의 수양딸 사미라 양은 “전사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집에 악귀를 몰고 왔다’며 쫓겨났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영웅 레나 클리모바 씨는 ‘반(反)동성애법’으로 인해 스스로를 ‘비정상적 괴물’로 여기는 청소년을 돕는 ‘칠드런404’ 설립자다. 2013년 출범한 이 단체는 “전통적이지 않은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몇 번이나 법정에 설 뻔하고 홈페이지도 여러 번 폐쇄됐다. 그는 “‘다름’에 대한 경멸과 증오가 넘치는 러시아에서 성 소수자인 아이들이 안락하게 쉴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메리 스튜어트밀러 씨는 2013년부터 노숙인 출신 요리사 스티브 반스 씨와 힘을 합해 이탈리아 로마 티부르티나 광장에서 매주 영양가 넘치는 스튜를 노숙인들에게 끓여 준다. 지금까지 노숙인 8000여 명이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스튜어트밀러 씨는 “세상은 갈수록 ‘내가 먼저’가 돼간다. 계속 이렇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프랑스 혁명기념일#가디언#이름없는 영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