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배경과 믿음이 다른 사람이 ‘꿈’이라는 직접적인 매개를 통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최근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몸과 영혼(On Body and Soul)’으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헝가리의 일디코 에네디 감독(62)이 한국을 찾았다. 그의 영화는 27일 개막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이날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극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에네디 감독은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이상적인 삶을 보여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며 “영화의 주요 소재인 꿈속 ‘사슴’만 해도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굶을 수도 있고 사냥꾼의 총에 맞을 수도 있다. 그런 접점이 닿아 있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영화는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운 여자와 반대로 모든 것이 권태로운 남자가 우연히 밤에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았다. 암수 사슴이 참나무 숲을 거니는 꿈 장면과 두 주인공의 현실 속 일터인 피가 흘러넘치는 도살장, 여기서 점차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는 감각적 연출이 돋보인다. 감독은 1989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이자 그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최고의 영화 10편 중 하나로 꼽힌 ‘나의 20세기’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후 10여 년 뒤에야 판타지 영화인 ‘마법사 시몬’(1999년)을, 또 18년이 지나서야 새 영화를 내놨다. “항상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펀딩이 어려워요. 문제는 돈이네요. 헝가리에서 리메이크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는데 온전히 제 작품이란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황금곰상 수상작이지만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낯선 얼굴이다. 감독은 “여배우는 연극배우로 활동해 왔지만 영화에 출연한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심지어 남자배우는 연기에 관심조차 없던 헝가리의 한 출판사 디렉터를 섭외했다.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던 감독은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통해 본인의 성격을 소개하기도 했다. “여주인공처럼 저도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일상적인 수다를 떤다거나 하는 것도 서툰…. 하지만 영화 찍을 때만큼은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달라지죠.”
감독은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도살장에 대해서도 “영화 등장인물들에겐 도살장이 일상적인 직장이지만, 동물들에겐 죽임을 당하는 장소”라면서 “그렇다고 채식주의자가 돼 달라는 영화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우리 곁의 일상적인 것들이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선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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