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망친다던 특수학교, 이젠 자랑거리라 하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2일 03시 00분


개교 20년 맞은 밀알복지재단 정형석 상임대표

개교 20주년을 맞은 발달장애아동 특수학교인 ‘밀알학교’의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가 서울 강남구 일원로 학교 앞에서 지난 20년 동안의 어려움과 보람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개교 20주년을 맞은 발달장애아동 특수학교인 ‘밀알학교’의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가 서울 강남구 일원로 학교 앞에서 지난 20년 동안의 어려움과 보람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동네를 죽일 줄 알았던 학교가 오히려 자랑거리가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죠.”

10일 서울 강남구 일원로 밀알학교에서 만난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60)는 험난했던 학교 건립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발달장애아동을 위해 설립한 밀알학교는 유치부, 초·중·고등부, 전공과 등의 교육 과정을 갖춘 특수학교다. 올해로 개교 20년을 맞았다. 현재 재학생은 206명.

밀알학교의 시작은 짧은 기도였다.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가 교회에서 “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제 아이를 먼저 데려가 주세요”라는 기도를 했는데, 이를 당시 목사인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75)이 우연히 들었다. 홍 목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장애아동을 돌볼 수 있는 특수학교를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1994년 서울시교육청에 학교설립계획서를 제출했다.

재단은 학부모들이 학생을 데리고 등하교하기 편하도록 서울 강남구 일원역 근처의 초등학교 터를 어렵사리 매입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의 반발이 거셌다. 정 상임대표는 “표면적으로는 ‘계획대로 초등학교를 지어라’라고 요구했지만 ‘다른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주민 100여 명이 몰려와 공사장 입구를 바리케이드로 봉쇄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공사장에 건설 장비가 들어올 기미가 보이면 바로 주민들이 나타나 몸으로 막았다. 정 상임대표 등이 나서서 “특수학교가 들어서도 주민 피해는 없다”고 계속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소송을 거쳐야 했다. 1996년 2월 법원이 밀알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학교는 1997년 준공돼 문을 열었다.

개교 후에도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했다. 정 상임대표는 “주민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학교 건물을 최대한 아름답게 지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학교 건물은 1998년 대한민국 건축가상을 받기도 했다. 2001년 문을 연 별관 ‘밀알아트센터’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 미술관, 음악당이 있다. 개방된 학교 공간을 오가면서 주민들의 편견도 사라져 갔다. 정 상임대표는 “특수학교가 들어온다고 해서 집값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아직도 그런 편견을 가진 분이 너무 많다”고 했다. 올해 교육부는 특수학교 주변 집값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20년간 학교가 배출한 졸업생은 고등부 기준 293명에 달한다. 정 상임대표는 “입학할 땐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의젓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했다”고 말했다. 4년 전 학교를 졸업한 양모 씨(24)는 취업난에도 의류계열 대기업에 들어갔다. 요즘도 종종 학교를 찾아 후배들을 격려한다.

지난 15년간 서울에 새로 생긴 특수학교는 없다. 2002년 개교한 종로구 경운학교가 마지막이다. 특히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정서장애 특수학교는 전국에 7곳뿐이다. 정 상임대표는 “약자는 정부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가 없다”며 “새 정부가 장애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밀알복지재단#정형석#발달장애아동 특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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