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프랑스 낭트에서 개막한 ‘2017 낭트 한국의 봄’ 축제에서 이정주 예술감독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는 한국 입양아 출신의 프랑스인 미라 보데즈 ‘낭트 한국의 봄 협회’ 회장이다. 두 사람은 4년 전부터 낭트에서 한국 문화예술 축제를 열고 있다. 낭트=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6일 프랑스 파리 외교관클럽에서 열린 한불 문화상 시상대에 키 작은 한국인 여성이 한 명이 이 나라 대표 국립극장인 샤요 극장장과 나란히 섰다. 낭트 한국의 봄 협회 미라 보데즈 회장(44). 연단 밑에선 이정주 예술감독(48)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4년 전 이 두 여성이 프랑스 파리에서 394km 떨어진 항구 도시 낭트에서 프랑스 지방 최초로 한국 문화 예술 축제를 열 때만 해도 가족들조차 무모하다고 말렸다. 지금은 매년 관객 3000명이 찾아오는 프랑스 서부 지역의 주요 축제로 자리 잡았다.
19일 ‘2017 낭트 한국의 봄’ 축제 개막식에 참석한 모철민 주프랑스 한국대사는 “오롯이 두 여성의 열정이 만들어 낸 축제”라며 극찬했다. ‘한국을 알리고 싶은’ 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최연소 이수자(이 감독)와 ‘한국을 알고 싶은’ 입양아 출신의 한방 간호사(보데즈 회장)가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3년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우러 서울에 머물던 보데즈 회장이 우연히 이 감독이 연 파티에 들르면서 시작됐다. 이 감독은 2002년 파리에서 국악 최초로 버스킹(길거리 공연)을 마친 뒤였다.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던 이 감독은 보데즈 회장에게 공연 번역을 부탁했다가 그의 한국과 음악에 대한 열정에 반했다. 공연 기획 방면에 인맥이 있던 보데즈 회장과 의기투합해 2004년부터 프랑스 투어를 시작했다.
2009년 두 사람은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알리자”는 목표 하나로 낭트에 들어왔다. 낭트의 항구가 쇠퇴하면서 문화 도시로 변모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택한 결정이었다. 오자마자 두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 공연, 음식을 곁들인 ‘한국의 밤 저녁행사’를 열었다. 이 감독은 “당시 주민들은 ‘코레(한국)’라고 하면 북한으로 생각할 정도로 한국을 몰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루아르 강가 집에 큰 태극기부터 내걸었다. 배를 타고 다니는 현지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감독은 “2009년 집에서 DVD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를 본 프랑스인 50여 명의 반응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영화 속 우리 옷의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 그리고 ‘금기’를 깨는 스토리에 관객들은 오전 2시가 넘도록 집에 갈 줄을 몰랐다. 영화와 공연, 거기다 한국 음식까지 더해진 이 저녁 행사는 낭트 지역 신문에 소개되면서 낭트의 명물로 떠올랐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2010년 낭트 한국 명예영사이자 시의원이었던 다니엘 라르질리에르마레샬이 먼저 한국 문화 축제 개최를 제안했다. 낭트의 대표 음악 축제인 바르바르 페스티벌에서 이 감독의 거문고 공연에 반한 인연이었다. 낭트 시와 한국문화원도 지원을 약속했다.
보데즈 회장은 1973년 태어난 뒤 이듬해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가정에 입양됐다.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둔 부부(남편은 엔지니어, 부인은 고교 영어 교사)의 막내였다. 그가 한국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다섯 차례나 한국에 데려간 부모의 정성 덕분이었다. 19일 개막식에도 부부는 개량 한복을 입고 딸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간호대학을 졸업한 보데즈 회장은 한국에서 배운 한의학을 낭트대에서 다시 공부하면서 추나요법, 침, 마사지 등 의료 일도 하고 있다. 이 감독에게 배운 거문고 실력도 수준급이다. 보데즈 회장에게 한국이 좋은 이유를 물어봤다. 한참 동안 허공만 바라보던 그는 “투(tout·‘모든 것’이라는 뜻)”라고 수줍게 말했다. 그는 “역사, 음식, 음악, 의학… 다 좋다. 한국 문화는 주변국 중국, 일본과 비교해도 깊이가 다르다. 낭트 시민들이 이를 알아가는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두 사람의 꿈은 두 가지다. 2023년 낭트 한국의 봄 축제 10주년을 낭트의 가장 유명한 성에서 여는 것. 2010년 일본 사무라이 전시회가 이 성에서 열리는 것을 본 뒤부터 변치 않는 꿈이다. 낭트에 한옥 공연장을 짓는 꿈도 꾸고 있다.
2009년부터 쭉 함께 살고 있는 두 사람은 “이제는 친자매”라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상대방 언어를 전혀 못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두 나라 언어 능통자가 됐다. 꿈을 가진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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