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오래 보기 전도사’ 임재준 교수
남편 사망 환자 위로 못한게 걸려… 초진 환자 대상 15분 진료 시작
“의사와 대화 처음” “속이 시원”… 다른 병원서도 소문 듣고 찾아와
“3년 전 외래에서 70대 할머니를 진료하다가 마침 그날 그분의 남편이 지병으로 사망한 걸 알게 됐어요. 손이라도 꼭 잡고 위로해 드리고 싶었는데…. 뒤에서 기다리는 환자들 때문에 약 처방만 해주고 ‘3개월 뒤에 오세요’라고만 했어요. 그땐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20일 오후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외래에서 만난 임재준 교수(48)는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초진 환자 오래 보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2015년 3월부터 서울대병원 최초로 초진 환자 15분 보기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4개월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임 교수는 “교과서에는 환자의 병력을 자세히 청취하고 신체 검진 등을 통해 환자를 진단하라고 돼 있지만 3분 진료로는 불가능했다”며 “15분 진료를 통해 후배들에게 가르친 대로, 또 제가 배운 대로 환자를 봤고 그러다 보니 자긍심도 높아졌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아니) 환자가 검사를 덜 받아도 됐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월, 수요일에는 기존 외래 진료를 하고, 목요일 오후엔 초진 환자를 대상으로 15분 진료를 한다. 원래 없던 진료를 새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재능기부인 셈이다. 병원에선 임 교수에게 진료 공간과 간호사를 지원해줬다. 평소엔 환자를 1시간당 10∼15명 정도 보지만 15분 진료 때는 1시간에 3, 4명만 본다.
“꼭 무의촌(無醫村)으로 멀리 떠나 진료하는 것만이 의료봉사인가요. 평소 시간을 내서 환자를 추가로 진료하는 것도 일종의 의료봉사가 아닐까요.”
임 교수의 15분 진료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다른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결핵 환자들이다. 이들은 질환의 경과에 대해 속 시원한 설명을 듣고 싶어 굳이 다시 임 교수를 찾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의사랑 대화하는 게 처음이다’ ‘몰랐던 것을 알게 돼 속이 너무 시원하다’며 고마워하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임 교수의 15분 진료에 동료 의사들도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선천성 질환이 많은 소아정형외과, 소아심장, 소아신경 분야 동료들의 관심이 많다고 한다. 선천성 질환은 진단이 어려워 오랫동안 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꼭 15분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며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고 덜 걸릴 때도 있다”고 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환자랑 여유 있게 대화하는 것”이라며 “‘긴 진료’가 ‘행복 바이러스’처럼 다른 대형병원으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적정한 수가를 책정해 15분 진료를 해도 병원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많은 병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임 교수는 “의사들이 자기 욕심만 차린다고 삐딱한 시각으로 보는 환자도 있는데, 서로 대화가 부족해 생긴 오해”라며 “15분 진료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를 쌓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환자 오래 보기 전도사로서 많은 병원이 동참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은 9월부터 호흡기내과, 내분비내과, 알레르기내과, 신경외과, 유방외과, 피부과, 산부인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신경), 소아청소년과(심장), 소아청소년과(신장) 등 11개 과에서 15분 진료 보기 시범사업을 1년 동안 펼친다(본보 7월 20일자 A1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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