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일을 미루는 타입이다. 그 때문에 감독을 포함해 나와 일하는 스태프들이 무척 힘들어한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까지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한다.”
‘라이온 킹’ ‘글래디에이터’ ‘캐리비안의 해적’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30년간 120편 넘는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은 독일 출생의 세계적 영화음악가 한스 치머(60)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다음 달 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 페스티벌에서 첫 아시아 공연을 갖는다. 치머는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명작들을 연주하는 19인조 밴드를 지휘하며 기타도 연주할 예정이다. 이 다작가(多作家)에게 최근 성공작 ‘덩케르크’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쉽지 않았기에 더 즐거운 작업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그답게 대담하고 실험적인 도전을 했고 나 역시 평소의 작업방식과 달리했다.”
치머는 “평소에는 메인 테마를 잡고 멜로디를 만든 뒤 그것을 토대로 점점 (음악을) 더해 가지만 ‘덩케르크’에서는 긴장감을 어떻게 고조시킬지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시각과 접근 방식을 ‘발견’하려고 힘을 쏟았다”고 덧붙였다.
리들리 스콧, 토니 스콧, 마이클 베이, 베르너 헤어초크, 우위썬(吳宇森)…. 다양한 스크린 명장들과 작업해온 그는 12년 전 ‘배트맨 비긴즈’부터 ‘덩케르크’까지 천재 감독 놀런과 단짝으로 합을 맞췄다. “그는 굉장한 스토리텔러다. 둘이서 재밌는 게임을 많이 했는데, 한번은 하루에 한 장씩 교환일기를 쓴 적도 있다. 놀런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로이 쓰면 난 거기에 대한 답장을 그날 해야 했다.”
대편성의 관현악곡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그이지만 평생 음악수업은 어릴 적 받은 고작 2주간의 피아노 레슨이 전부다. 그는 본디 스탠리 마이어스의 조수였다. 마이어스는 영화 ‘디어헌터’의 주제곡 ‘Cavatina’를 작곡한 영화음악 거장이다. 치머는 1988년 ‘갈라진 세계’ ‘레인맨’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아이디어와 성실성으로 승부했다. “내가 작업한 영화 목록(개수)을 보면 내가 밖에 별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게 내 인생이다. 난 음악을 사랑하고, 다른 것과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스튜디오에 묻혀 작업하던 치머가 최근 악단을 이끌고 순회공연을 시작하자 큰 화제가 됐다. 4월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에서는 많은 평론가와 관객이 록 밴드나 래퍼의 공연을 제치고 치머의 무대를 최고로 꼽았다. “핑크 플로이드와 작업했고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조명디자인을 맡은 마크 브릭먼이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영화음악은 미리 완벽한 사운드를 녹음하지만 콘서트는 라이브다. 그 순간에 전부를 쏟아 넣고, 관객과 내가 서로의 일부가 되는 경험은 순간에만 유효하다.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요즘 세상에 이렇게 예술에 의지해 하나가 된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치머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했다. “음악가로서 평생을 걸어 정말 좋은 음악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도 범부처럼 가족과 극장에 가서 영화를 즐길 수 있을까. 일로 느끼지 않고. “당연한 소리! 음악을 분석하고 있다거나 하는 그런 피곤한 일은 하지 않는다. 언제든 영화를 볼 때면 난 ‘아이’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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