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아내 남겨두고 참전했다… 노전평 전투서 산화 故 김창헌 일병
유해 발굴… DNA검사 거쳐 확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4일 1951년 9월 강원 인제군 노전평 전투에 참전했다 숨진 김창헌 일병 유해와 인식표 등 유품을 부인 황용녀 씨(왼쪽에서 두 번째)에게 전달했다. 6·25전사자의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사업 이래 이번이 125번째다. 국방부 제공
만삭의 아내를 남겨두고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국군용사가 66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4일 6·25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1951년 8월 9일∼9월 18일)에서 산화한 김창헌 일병(당시 28세)의 유해와 유품을 부인 황용녀 씨(94·경기 성남시)에게 인도하는 ‘호국영웅 귀환행사’를 거행했다. 전사자 신원 확인 통지서와 국방부 장관의 위로패, 유해 수습 때 관을 덮은 태극기 등도 함께 전달됐다고 유해발굴단은 전했다.
1924년 경기 안성시 삼죽면 용월리에서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난 김 일병은 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다 1944년 4월 황 씨와 결혼했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국군 8사단 10연대에 배치됐다. 그해 8월 국군 8사단은 전략적 요충지인 강원 인제군 서화리 일대 고지를 놓고 북한군 1만여 명을 상대로 두 차례의 격전(1, 2차 노전평 전투)을 치렀다. 김 일병은 1951년 8월 25일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유해는 올해 7월 5일 인제군 서화리 무명 900고지 일대에서 ‘0184968’이라는 군번이 적힌 인식표와 한자 이름이 새겨진 도장, 버클 등과 함께 발굴됐다. 하지만 인식표와 도장에 새겨진 일부 글자가 오랜 세월에 뭉개진 탓에 전사자 명부와 병적 자료를 일일이 대조한 끝에 신원을 최종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해발굴단은 고인의 유전자(DNA) 시료가 딸 김인석 씨(66)가 2008년 6월 제출한 유전자 시료와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9월 말 유족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 아내 황 씨는 “남편이 복중(腹中)의 아이를 사내아이로 여겨 남자 이름을 지어주고 전쟁터로 떠났는데 그로부터 10일 후 딸이 태어났다”며 “남편이 지어준 소중한 이름이라 그대로 쓰기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떠난 후 보따리 장사와 노점상으로 홀로 딸을 키웠다”면서 “이제라도 남편 유해를 찾게 돼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일병의 유해는 유족과 협의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 일병을 포함해 2000년 유해 발굴사업이 시작된 이래 신원이 확인된 6·25 전사자는 12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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