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민관식 前국회부의장 부인 김영호 여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6일 03시 00분


정치인 남편 ‘요리 내조’… 한식 코스요리 개발

“주방에서 역사를 만들어냈다.”

4일 별세한 고 민관식 전 국회 부의장의 부인 김영호 여사(93·사진)에겐 이런 말이 따라붙는다. 김 여사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당시 정관계 인사를 대접하며 대한체육회장 문교부 장관 등을 지낸 민 전 부의장을 내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 여사가 1995년 펴낸 요리 관련 저서인 ‘나의 주방생활 50년’에는 한식과 그의 부부가 부대낀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탁월한 음식 솜씨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 한국을 찾은 외국 인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88년 4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요리대회에 당시 동아일보 김상만 명예회장의 권유로 참가해 비빔밥으로 2위에 입상한 일화도 있다.

김 여사는 한식 코스요리를 처음 선보인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80년 서울 중구 묵정동에 한식당 ‘담소원’을 연 데 이어 1984년부터는 이화여대 후문에 ‘마리’라는 한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장관을 지낸 분의 부인이 무슨 음식 장사를 하느냐”는 말을 무릅쓰고 한식 코스요리의 새 지평을 연 것이다. 2015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외국분들이 맛있다고 하셔서 우리나라 음식이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다만 한꺼번에 상에 올려놓기 때문에 따뜻한 음식과 찬 음식이 그때그때 제맛을 내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양식처럼 코스를 만들게 됐다”고 코스요리 개발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결혼 전까지 가마꾼을 부리며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을 정도의 개성 부잣집 맏딸로 귀하게 컸지만 평생 체육인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면서 양조공장과 한식당 사업 등을 성공시킨 여장부이기도 했다. 민 전 부의장이 정치에서 손을 뗀 것도 김 여사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한다. 1980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단상에 민 전 부의장이 국회의장 대행 자격으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김 여사가 “더 이상 정치에 미련 갖지 마시고 오늘로 끝내십시다”라고 했더니 곧바로 승낙하고는 이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는 것이다.

김 여사는 2006년 민 전 부의장이 작고하기 전까지 65년을 해로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병찬, 병환 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02-3410-6917)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오전 7시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정치인 남편 내조#한식 코스요리 개발#민관식 전 국회부의장 부인 김영호 여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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