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우당교양관에서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왼쪽 사진)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합동 강의를 하고 있다. 문 교수는 ‘전쟁과 평화’, 최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의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촛불시위 이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지만 그것이 대안은 아니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74)는 23일 고려대 우당교양관 602호 대강당에서 열린 고려대-연세대 합동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촛불집회가 맞물리면서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보다 우월한 듯 여기는 게 유행처럼 퍼지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얗게 센 머리에 까만 뿔테 안경을 쓴 노교수의 열강에 학생 400여 명의 눈빛은 반짝였다.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부작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를 든 최 교수는 “‘소년범을 무겁게 처벌하라’ ‘여성도 군대 보내라’ 등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슈를 즉흥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이는 여론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 차분한 숙의 과정을 건너뛰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재에 그쳐야지 대안 체제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직접민주주의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와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치밀하고 지속적인 리더십, 그리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최 교수와 함께 강의에 나선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66·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한반도 정세를 강의했다. 문 교수는 학자로서의 시각이라고 전제하며 “북한은 악마적 국가 체계인 건 분명하다”면서도 “북한을 지나치게 악마화시키지 말고 적당한 수준에서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북한을 악마처럼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가치보다 이익을 강조하는데 갑자기 북한 인권을 강조했다”며 “북핵 문제 하나만으로도 해결이 어려운데 인권 등을 다 같이 집어넣으면 해결되겠나”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를 처음부터 전제하고 들이밀면 북핵 문제를 놓고 협상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핵 동결을 협상하고 이후 핵시설 검증과 폐기, 핵무기 폐기 순으로 이뤄지는 게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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