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외대부고 3학년인 권성현 군(18)은 올해 7월 학교 수업 도중 코피를 쏟았다. 기말고사를 앞둔 고3 수험생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코피는 병원 처치를 받을 때까지 5시간 동안 멎지 않았다. 이틀 뒤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 진단 결과 백혈병이었다.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시작되기 딱 하루 전이었다. 권 군의 ‘대입 시계’는 그대로 멎는 듯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대입을 준비했기에 원망이 앞섰다. “‘10만 명 중 4, 5명이 걸린다는데 왜 하필 나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권 군은 이 학교 자연계열 150여 명 중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학생부종합전형에 반영되는 기말고사를 보지 못한 채 입원해야 했다.
투병 생활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항암제를 투여하면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입안은 헐어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권 군은 6주씩 두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골수 검사도 네 번이나 했다. 수능 공부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네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1차 항암치료를 마친 권 군은 2차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3주 동안 수시모집에 지원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썼다. 기말고사를 보지 못했지만 중간고사 성적의 일정 비율을 반영해 응시할 수 있었다. 2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머리카락이 숭숭 빠진 상태에서 이달 2일 면접을 봤다. 불행 중 다행으로 70분 동안 진행된 면접 당일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어느 수험생보다 힘든 시간을 보낸 권 군은 21일 꿈에 그리던 서울대 의대 수시모집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1, 2차 항암치료 결과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그나마 새로운 약을 먹으면서 백혈구 수치는 나아졌다. 하지만 골수 이식을 받지 못하면 언제 재발할지 안심할 수 없다. 권 군은 입학도 하기 전에 휴학부터 해야 할 처지다. 1년간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
24일 기자를 만난 권 군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는 “병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투병 전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웃었다. 당찬 포부도 밝혔다. “직접 환자가 돼본 만큼 환자가 어떤 부분에 두려움을 느끼고, 어떤 도움이 절실한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환자 마음을 이해하는 신경외과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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