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5회를 맞은 ‘동아일보기 전국정구대회’는 단일 종목 스포츠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전국여자연식정구대회라는 명칭으로 시작한 이 대회는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경기로 시작됐다.
1923년 6월 30일 서울 정동에 있던 경성제일고등여학교 코트. 무명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이 댕기머리를 휘날리면서 힘찬 스매싱을 했다. 서울의 진명 숙명 배화 동덕여고, 공주영명학교, 개성호수돈여고 등 8개교 40여 팀이 참가했다.
여성이 치마를 입은 채 코트를 누빈다는 건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해괴한 짓’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대회 불가(不可) 여론이 워낙 거세자 ‘가족과 대회 임원 외 남성의 입장을 불허한다’는 조건을 걸고 겨우 대회를 열 수 있었다. 하지만 3만 명으로 추산되는 구름 관중이 몰렸다. 당시 경성 인구가 25만 명이었으니 대성황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할 지경이었다. 몰려든 남성 관중은 학교 담장 위로 촘촘히 머리를 내밀었고,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근처 나무에도 매달려 있었다.
대회 당일 동아일보 사설은 “모성의 권위를 역창(力唱)하야 남자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과 직업의 기회균등을 주장하야 전 세계의 남자와 당당히 맞서는 일반 부인운동의 대세는 물론이라”라며 스포츠를 통한 여성 지위 향상을 강조했다. 2006년부터 남자 선수의 출전을 허용했다.
동아일보는 2년 뒤인 1925년 3월 20일에는 조선 최초로 ‘전조선여자웅변대회’를 개최해 여권 신장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천도교 기념회관에서 열린 이 대회는 평양에서 온 김화진 여사가 ‘남녀평등을 부르짖노라’는 제목으로 힘찬 첫 연설을 시작했다. “남녀는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습니다. 우리 조선의 여성이 남자의 지위와 대등하게 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살림살이다운 살림살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전조선여자웅변대회에는 전국에서 6개 단체와 6개 학교의 대표가 참가했다. 개막 한 시간 전에 초만원을 이뤘고 회관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만 3000명이 넘었다. 전례 없이 청중 투표로 결정된 우승자는 평양의 여자엡윗청년회(단체부), 평양의 정미유치사범과 대표(학생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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