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국내 1호 무대미술·의상 디자이너 이병복 선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일 03시 00분


무대미술 예술로 끌어올린 ‘연극계 대모’

국내 1호 무대미술·의상 디자이너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이병복 선생(사진)이 지난해 12월 2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1927년 경북 영천 만석꾼 집안의 10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고인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재학 중 연극반을 통해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무대미술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1960년대 처음 무대미술·의상 디자이너로 등장한 고인은 1966년 김정옥 연출가와 극단 ‘자유’를 창단했다. 배우 박정자, 김용림, 김혜자, 최불암, 고 윤소정 등이 ‘자유’ 창단 멤버다.

고인은 ‘따라지의 향연’(1966년)을 시작으로 ‘왕자 호동’ ‘노을을 나르는 새들’ ‘햄릿’ ‘어디서 무엇이 돼 다시 만나랴’ 등 40여 년간 200여 개 작품의 무대와 의상을 도맡아 무대미술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이름 앞에 ‘무대미술계의 대모’란 수식어가 따라다닌 이유다.

1969년 서울 명동에 국내 최초의 카페형 소극장 ‘까페 떼아뜨르’를 개관해 소극장 운동의 물꼬를 텄다. 김정옥 연출가는 3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병복 선생은 사실주의 양식에 국한돼 있던 무대미술의 틀을 깨고 추상적이고 상징주의적인 무대미술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고인은 1970년대 초부터 세계무대미술가협회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한국 연극을 해외에 적극 알렸다. 김 연출가는 “‘따라지…’와 ‘어디서 무엇이…’로 동아연극상 대상을 받았을 때 기뻐하던 선생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배우 박정자 씨는 “무대를 빛내는 ‘뒷광대’를 운명으로 여기신 선생은 의상도 영혼을 품은 연기자라 생각하셔서 늘 의상을 미리 제작해 연습할 때부터 배우에게 입히셨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선생이 ‘나는 무대 뒤 먼지를 쓸다가 예술원 회원이 됐어’라고 말씀하셨다”며 “무대 뒤 먼지까지도 사랑하실 정도로 무대에 대한 애정이 컸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한불문화협회장, 무대미술가협회장 등을 지냈으며 화관문화훈장, 동아연극상, 백상예술상, 동랑연극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권유진(첼리스트) 이나 씨(재프랑스 화가) 등 1남 1녀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은 1일. 장례는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치러진다. 02-927-4404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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