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발빠른 기술혁신… 글로벌 두뇌들 제 발로 찾아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3만 혁신기업이 3만달러 한국 이끈다]<4> 인재 빨아들이는 日 스타트업

일본 엘리트 청년들의 선호 직장 1위는 이제 대기업이 아니다. 스타트업의 혁신기술이 인재를 부르고, 그렇게 모인 인재가 기업 경쟁력을 증강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인재들이 기술보다 간판에 치중하고, 스타트업은 인재난에 허덕이는 한국으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지난해 12월 20일 방문한 일본 도쿄 시부야의 ‘리프마인드’ 사무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엔지니어들이 모니터 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엔지니어(32명)의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글로벌 인재 집합소인 셈이다.

이 회사는 전력이 많이 들고 고가인 그래픽처리장치(GPU)나 클라우드 대신 작은 칩으로 인공지능(AI) 딥러닝을 구현한다. 리프마인드가 개발한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용도 변경이 가능한 반도체)는 메모리 사이즈가 500분의 1로 줄었으면서도 정확도는 기존 제품과 비슷하다. 속도는 중앙처리장치(CPU)보다 40배 빠르지만 전력은 적게 먹는다.

미무로 유키 리프마인드 컨설팅 팀장(26)은 “회사가 국제 학회에 발표한 논문을 보고 직접 찾아오거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함께 연구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대기업에서 넘어오는 사람이 많다”고 소개했다.

○ 혁신기술 보고 제 발로 오는 인재들

2012년 창업한 리프마인드는 스스로를 ‘DoT’ 업체라고 소개했다. DoT는 ‘Deep Learning of Things’의 줄임말로, 리프마인드가 만든 조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사물인터넷(IoT)이 연결성에 중점을 둔 개념이라면, DoT는 칩마다 이미지와 음성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딥러닝 기능이 탑재된 더 진화된 기술이다. 딥러닝 기술을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게 하자는 ‘딥러닝 민주화’ 비전과 이를 위해 하드웨어를 함께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은 이 회사에 글로벌 인재들이 몰리는 강력한 유인책이다. 이 기술 덕분에 지난해 10월 인텔 등 7개 업체로부터 11억5000만 엔(약 108억 원)을 투자받는 등 최근 2년간 약 15억 엔(약 141억 원)을 유치했다.

도쿄 중심지인 지요다구 오테마치에 위치한 또 다른 AI 스타트업 ‘프리퍼드네트워크스(PFN)’. 도쿄대 이공계 출신들이 설립한 AI 딥러닝 기술 개발 업체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 체이너(Chainer)라는 독보적 AI 기술을 가진 곳으로 도요타, 인텔,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들과 자율주행 산업용 로봇 분야 등에서 협업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도요타자동차는 PFN에 105억 엔(약 987억 원)을 출자했다.

지난해 12월 22일 만난 하세가와 주니치 PFN 최고집행책임자(COO·56)는 “PFN 직원 110명 중 90%가 석·박사급 연구 인력으로, 딥러닝을 제대로 연구하고 운용할 줄 아는 슈퍼 엔지니어가 많은 것이 우리 회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이나 자동화 기계를 만들 때 AI 알고리즘만 개발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기계를 만지면서 개발할 수 있는 환경에 매력을 느낀 이 분야 인재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PFN이 AI 업계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인재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첫 계기는 빠른 시장 선점에 있었다. 하세가와 COO는 “2006년경 기계학습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대중은 관심이 없었지만 그걸 이해하고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이 PFN 창업자들”이라면서 “딥러닝이라는 최첨단 기술에 흥미를 가진 인재들이 현재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진 회사가 어딘지, 그 기술을 잘 활용하는 곳이 어딘지 스스로 판단하고 오는 것이다. 대기업 간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PFN은 당초 언론사 홈페이지와 사내 기사검색 엔진을 개발하던 프리퍼드인스트럭처에서 2014년 분사했다. 자연어 처리 기반의 데이터 처리 시장이 작다고 판단해 딥러닝 기술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서둘러 사업을 재정비했다. 2014년 10명이던 딥러닝 엔지니어는 현재 100명이 넘는다.

○ 스타트업 무기는 스피드와 포지셔닝

도쿄 진구마에 사무실에서 만난 일본 드론 측량 1위 업체 ‘테라드론’의 세키 뎃페이 부사장(29)도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의 최대 무기는 스피드와 포지셔닝”이라며 “대기업과 달리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일본 스타트업의 역동성은 이미 성공한 기성 기업인들까지 움직였다. 테라드론과 테라모터스(전기스쿠터 제조업체)를 거느린 테라그룹에는 이데이 노부유키 전 소니 회장과 애플, 구글 임원 출신 등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테라드론에 입사한 와세다대 출신 신충국 씨(26)는 “10년 전까지 명문대 출신들이 상사나 외자 기업으로 많이 갔지만 최근에는 우수한 인재일수록 100명 이하의 벤처로 가려는 사람이 늘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규모가 작아도 기술 경쟁력이 있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재량권을 주는 스타트업에 인재들이 몰린다는 얘기다.

테라드론의 모체인 테라모터스 시절 입사한 세키 부사장도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해외지사에 파견됐다. 현지 업체와 미팅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협력모델을 찾는 데 최고경영자(CEO) 못지않은 재량권을 갖고 일했다. 이런 식으로 2016∼2017년 2년간 테라드론이 파트너십을 맺은 회사만 100개가 넘는다.

신사업을 찾는 과정에서도 빠른 의사결정 속도가 빛을 발했다. 당시 AI는 이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이 선도하고 있었지만 드론은 중국 DJI가 하드웨어에서 앞서나간 것 외에 소프트웨어, 서비스 분야가 무주공산이었다. 일단 사업 분야를 선정한 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측량에 드론을 도입했던 ‘리카노스’를 인수하고 3차원 매핑과 라이다(공간측정센서)를 이용해 측량 기술 차별화에 힘썼다. 그 결과 도쿄전력, 가시마건설 등 현지 대기업은 물론이고 제이컵스 등 글로벌 기업들의 협력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도쿄=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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