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펠로시 “드리머 보호” 8시간 연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9일 03시 00분


민주당 하원 여성 원내대표, 10cm 킬힐 신고 하원 최장 연설

“저에게 주어진 ‘대표 발언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겠습니다.”

7일 오전 10시 4분(현지 시간) 미국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 연설대 앞에 선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발언을 시작한 지 2분 30초 지난 뒤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1분의 발언 시간을 얻었지만 ‘하원 원내대표와 하원의장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발언할 수 있다’는 의사규칙을 활용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와 달리 중간에 휴식을 가질 수 없으며, 표결방해 행위도 아니다.

78세의 노장 여성 정치인은 4인치(약 10.2cm) 높이의 하이힐을 신은 채 8시간 7분 동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드리머(Dreamer·불법 체류자의 자녀들)를 보호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장실에 가지도, 의자에 앉지도 않고 이따금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기만 했다. 1909년 민주당 챔프 클라크 의원이 수립한 최장 연설 기록(5시간 15분)을 2시간 52분 경신한 신기록이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펠로시 대표의 발언을 ‘다카버스터’(다카+필리버스터의 합성어)라고 이름 붙였다. 다카(DACA)는 ‘불법 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제도를 다음 달 5일 폐기할 예정이다. 펠로시 대표는 DACA 폐지를 반대해 왔다.

펠로시 대표는 공화당 소속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DACA가 포함된 이민 입법안 표결을 먼저 약속하지 않으면 미 상원이 마련한 연방정부 예산안을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젊은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드리머들은 그 일부”라며 DACA의 혜택을 받아 미국에서 꿈을 이뤄온 드리머들의 사례를 열거하면서 중간중간 성경을 인용하기도 했다.

연설 막바지에 이를수록 펠로시 대표의 목소리는 흐트러졌고, 글을 더듬더듬 읽기도 했다. 오후 6시 10분, 그는 “미국을 더 미국답게 만들기 위한 드리머들의 용기, 낙관주의, 영감에 감사하고 그것들을 인정하자”며 연설을 마쳤다. 회의장에 착석해 있던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다카버스터#불법 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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