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횡성서 세계 첫 로봇 스키대회
사람 스키기술 구현해낸 ‘다이애나’, 두발 넓게 벌린 ‘태권브이’ 등 8팀
80m 코스 기문 5개 통과 시간 경쟁, 최고기록 16.9초… 중급 스키어 수준
11일 강원 횡성군 웰리힐리파크 스키장. 몸체에 팔다리가 달린 ‘인간형 로봇’이 스키를 타고 눈밭을 내려오고 있었다.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 맞춰 열리는 ‘스키로봇챌린지’를 하루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는 것. 이번 대회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스키 경기를 벌이는 세계 최초의 로봇 스키 대회다. 영하 10도 이하의 맹추위 속에서도 준비 팀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스키로봇 ‘다이애나’로 출전하는 한재권 한양대 교수는 “경기 전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려고 밤늦게까지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총 8개 팀이 실력을 겨룬다. 인공지능(AI) 로봇이 기문(깃발)을 인식해 스스로 판단하고 스키를 탄다. 겨울올림픽 스키 대회와 대체로 비슷하지만 로봇의 특성을 감안해 규정과 난이도를 일부 변경했다. 코스 길이는 총 80m. 중간중간 설치한 두 개의 기문 사이를 다섯 번 통과해야 한다. 기문 통과 횟수가 같다면 속도가 빠른 팀이 승리한다.
경기에 출전하는 로봇의 스키 실력은 어떨까. 11일 오후 열린 출발 순서 결정전에서 1위를 한 로봇융합연구원(로봇연)의 스키로봇 스키로는 이날 기문 4개를 통과하고 하나를 놓쳤다. 시간은 26.4초. 지난 사흘간 최종 연습 과정에서 로봇들의 최고기록은 16.9초 정도였다.
대한스키지도자연맹에서 발급한 레벨1 강사 자격증을 보유한 20년 경력의 스키어인 기자가 로봇 스키 경기 코스에 도전한 결과 기문 5개를 모두 통과해 결승선을 넘어서는 데 걸린 시간은 11.3초. 프로 스키어라면 1초 정도는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봇이 사람보다는 천천히 내려오지만 스키 초보자는 기문 통과가 쉽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로봇들의 실력은 중급 정도는 되어 보였다.
출전 팀마다 전략이 제각각인 것도 눈여겨볼 만했다. 연습 과정에서 5개 기문을 모두 통과하는 데 가장 많이 성공한 팀은 미니로봇팀. 키 75cm의 소형 로봇 ‘태권브이’를 개발했는데 이 로봇은 두 발을 넓게 벌린 ‘와이드 스탠스’ 형태로 안정감 있게 스키를 탄다. 로봇연의 키 80cm인 소형로봇 루돌프도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
한양대 팀이 개발한 로봇 ‘다이애나’는 인간의 스키 기술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국가대표 스키 선수 출신 문정인 코치가 개발에 참여했다. 스키를 몸 아래로 통과시켜 회전을 시작하는 ‘크로스언더’라는 상급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KAIST팀의 로봇 티보 역시 인간의 스키 동작을 흉내 내는 전략을 취했다.
국민대 팀의 스키로봇 RoK-2는 관절구조에 집중해 가장 효율적으로 스키를 탈 수 있게 개발했다. 서울과기대팀은 스키에 최적화된 이중 뼈대 구조의 ‘루돌프’를 제작해 경기에 임하고 있다. 경북대 팀의 로봇 알렉시는 두 다리를 A자 형태로 벌리고 안정적으로 스키를 탔다. 명지대 팀의 로봇 MHSRP는 출발 순서 결정전에서는 최하위였다.
로봇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을 위해 경기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고 정기적으로 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대회를 주관하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류지호 로봇성장사업단장은 “눈 위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는 스키 기술을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로봇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큰 보탬이 된다”며 “매년 국내에서 열거나 외국과 연계해 겨울올림픽 때마다 개최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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