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에 또 기부한 권오춘 선생
2억 객석 기부 이어 공연예산 지원… 그림 등 312점 모교 기증해 4월 전시
지금까지 예술가들에 80억 후원… “문화는 우리의 혼줄, 더 키워야죠”
자택에 보관 중인 수집 도자기를 들어 보이며 미소짓는 권오춘 씨. 그는 “문화에 눈뜬 뒤 삶이 달라졌다”며 “한국의 문화 발전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문화를 알기 전과 후의 삶이 많이 다릅니다. 문화는 우리의 ‘혼줄’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문화를 즐기는 문화 선진국이 됐으면 합니다.”
초허당(草墟堂) 권오춘 씨(81)는 문화계에서 오랫동안 ‘가난한 예술가들의 벗’이라 불려 왔다. 크고 작은 사업을 하며 모은 돈으로 1980년부터 37년간 예술가 350여 명에게 생활비와 자녀 학비 등을 후원했다. 지금까지 지원한 액수가 8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도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전에도 2억 원 상당의 객석 40석을 기부했다. 그는 20일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을 만나 “이탈리아 5대 오페라 작곡가의 작품을 기획해 달라”고 제안했는데, 이를 수락하자 공연 예산으로 3000만 원을 지원한 것이다.
초허당이 지난해 말 모교인 동국대에 기증한 그림 도자기 등 미술작품 312점이 다음 달 동국대 일산 바이오메디캠퍼스에 전시된다. 그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37년간 모은 작품이 새로운 둥지를 찾아 기쁘다”며 “알고 지내던 작가들에게 정성(후원금)을 건네고 받은 작품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왜 이렇게 문화계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까. 시작은 1980년대 우연히 목격한 부부싸움이었다. “화가인 남편은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데’라며, 아내는 ‘그거 하면 쌀이 나오느냐’며 다투는 모습을 봤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양쪽 모두 일리가 있더군요.”
이후 화가 도예가 조각가들과 교류하며 차츰 예술에 눈을 떴다. 가난한 시골에서 6남매 막내로 태어나 남매 넷을 둔 가장이 되기까지 예술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그였다. 초허당은 “정갈한 마음과 힘든 상황에도 작업을 이어가는 의지에 매료됐다.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남이 볼 땐 부러운 여유였겠지만, 그의 생활이 늘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부도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고 생활비가 쪼들리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수입의 20%를 늘 후원자금으로 따로 모았다. 큰돈이 아니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가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후원한 예술가 가운데 유명 작가나 대학교수가 된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초허당은 늘 잔소리를 한다고 한다.
“세속과 다소 동떨어진 삶에서 참된 감동을 주는 작품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교수가 되면 금전적 심리적인 이유로 동료들이 하지 못하는 도전적인 작품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초허당은 예술가 후원 외에도 ‘D학점 이상 지방 출신 이공계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동국대에 26억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나눔은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건강 악화와 교통사고를 겪으며 어쩌면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며 “꿈이 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가진 걸 모두 돌려주고 떠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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