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군 제대 뒤 사회생활을 하다 30세의 나이에 뒤늦게 출가한 제자에게 법명(法名·출가자에게 주는 이름)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선종화 심우도(尋牛圖)의 득우(得牛)였다. 이는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으로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스승은 지난달 26일 입적한 오현 스님, 제자는 강원 양양군 진전사 주지 득우 스님이다.
진전사에서 25일 만난 득우 스님은 출가 무렵 기억을 더듬었다.
“1990년 오현 스님이 낙산사 회주로 계실 때 스승으로 모시게 됐죠. 그 전에 불교를 비판한 글에 대한 스님의 반박 칼럼을 신문에서 볼 기회가 있었어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분을 은사로 모시게 된 겁니다.”
오현 스님의 사십구재 중 5재(五齋)가 29일 오전 10시 진전사에서 치러진다. 불교 의식과 함께, 생전 인연이 있던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살풀이로 스님의 영혼을 위로할 예정이다. 마지막 7재는 7월 13일 강원 고성군 건봉사에서 진행된다.
법명의 무게가 너무 컸을까? 득우 스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불법으로 맺어진 인연은 아버지이자 스승이죠. 당신은 가셨다지만 제자들은 못 보내드릴 것 같아요. 저는 특히 속 많이 썩이고 이름값을 못 했으니….”
신라에 선종을 전래한 도의 국사가 8세기경 창건했고 제자인 ‘삼국유사’의 일연 스님이 출가한 진전사에는 오현 스님의 못다 한 꿈이 서려 있다. 1960년대 이전까지 절 이름이 둔전사로 알려져 왔는데, 폐사지에서 절 이름을 알 수 있는 ‘진전(陳田)’이란 글씨를 새긴 기와조각 등이 출토됐다. 인근에 국보 제122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은사는 조계종찰인 이곳을 제대로 복원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뒤편에는 수행자들을 위한 선원을 지어 참선하면서 말년을 보내려 하셨고요.”
득우 스님이 기억하는 은사의 제자 사랑은 엄했다.
“둘이 있을 때는 득우야, 하며 속가의 아버지보다 더 다정하게 불렀어요.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더 엄했죠. 그래야 상하좌우 모두 정렬되니까요.(웃음)”
휴대전화로 주고받은 은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제자의 마음에는 빈자리가 크다.
“중이 나처럼 글 쓰면 안 된다, 주변 사람들하고 어울려 잘 사는 게 최고다, 말년에 이런저런 것 해 봤는데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니 마음자리 잘 가꾸면서 참선하고 기도하며 살라는 말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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